상단여백
HOME 기획
사회 속에서 길을 잃은 방랑자, 고시낭인
  • 인하교지편집위원회 최광민
  • 승인 2017.04.28 19:08
  • 댓글 0

 

불안한 경제상황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되고 싶은 직업 1순위로 공무원을 써넣고, 취업준비생 3명 중 1명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공무원 시험 준비에 뛰어들거나, 직장을 퇴직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진하는 모습은 이제 희한한 풍경이 아니다.

이러한 풍조 속에서 소위 ‘고시낭인’, ‘장수생’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공부한 시간이 합격을 보장해주지 않는 만큼, 장수생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 기간은 사회와 단절된 시간이 된다. 그 공백은 비어있는 이력으로 치부되며, 여러 사회적 제약으로 작용한다.

사회 전반적인 인식 또한 장기간 공시를 준비한 장수생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심지어 공무원 시험 준비생 커뮤니티 내에서도 장수생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시험에 매달리거나 괜한 미련 때문에 시험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취급된다.

하지만 위의 문제를 단순히 장수생 개개인의 문제,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그들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게 하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질문을 던져야 할 문제다. 될 때까지 시험을 치러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중도 포기는 곧 갈 곳 없는 미래를 의미한다. 그들은 왜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것일까.

 

장수생이 겪는 사회적 제약

공무원 시험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의 노동현실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는 추세이며, 2016년 신규채용 비율도 작년 대비 4.4% 감소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7년 상반기 4년제 대졸 정규직 신입 채용계획’ 설문조사 결과, 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은 상반기 대졸자 신규채용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설령 인턴으로 취직하더라도 상황은 많이 달라지지 않는다. 웹툰 「무한동력」의 등장인물인 공무원 시험 준비생 ‘진기한’은 인턴으로 취직하는 데 성공하지만, 10개월 계약 근무를 마쳐도 정직원 전환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한국의 노동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 구조에 일조한 기업은 정작 공무원 시험 준비생에게 관대하지 않다.

공무원 시험을 장기간 준비하다가 다른 직업 구직에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장수생을 보는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2016년도 12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서류전형 합격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기준은 ‘최종 학교 졸업 시점’이었다. 장기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장수생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 오랜 준비 기간은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 이력에 공무원 시험 준비 기간이 있다는 이유로 불합격시키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취업 관련 특강에서는 공무원 시험 준비 경력을 이력에서 빼기를 권장한다. 하지만 나이 또한 하나의 경쟁력으로 취급하는 인사제도 앞에서 그런 방법마저 여의치 않다.

엄밀히 말해 그들이 겪는 딜레마는 사회 구조 차원의 문제다. 시작부터 장수생을 배제 대상으로 취급하는 구직 상황은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게 되는 원인이다. 특히 자기소개서와 면접 위주의 취업 과정은 경력이 단절된 그들을 더욱 압박한다. 다른 취업준비생에 비교해서 볼 때 공무원 시험 준비 기간은 공백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취업준비생과 다르게 ‘스펙’을 쌓을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로 진출할 통로가 매우 좁아진다는 점, 그리고 그 현실을 견디지 못해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수생이라면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다는 태도나, 견디기 힘들면 합격하라는 식의 태도로만 바라보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장수생의 문제는 보통 장수생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좀처럼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논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는 고려하지 않는 셈이다. 사회에 깔린 인식은 장수생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갈 가능성을 차단하고 끊임없이 공무원 시험-구직-다시 공무원 시험에 이르는 악순환을 재생산한다.

 

그들이 갈 곳은 어디에

이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장수생이 느끼는 사회적 단절 또한 주목해야 할 문제다. 장수생 대부분은 마땅한 수입원 없이 고시촌이나 독서실에 고립된 채로 시험 준비에 매진해야 하고, 장기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장기간의 낭인 생활은 그들을 사회적 단절로 이끌고 있다. 어떤 수입원 없이 계속해서 시험 준비만을 해야 하는 장수생이 이러한 심리적인 압박감을 떨쳐내고 사회 구성원으로 재기하기는 어렵다. 특히 대인관계 단절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장수생이 많다.

대표적인 이유가 장수생을 대하는 시선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장수생은 ‘합법적 백수’ 같은 말로 불리기도 하며, 심지어 같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 사이에서도 장수생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장수생은 자기관리에 실패했거나 공부 방법 자체가 잘못된, 혹은 가능성 없는 시험을 미련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심한 경우 ‘고시충’, ‘공시충’ 같은 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시선 속에서 장수생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낙오자 취급을 택해야만 한다. 사회적 압박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후속 대책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장수생들의 단절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단절, 시험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단절인 것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공무원 학원이 밀집된 서울시 동작구 마음건강센터에 따르면 관내 공무원 시험 준비생 중 70% 이상이 우울증‧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이는 일반 주민 세 배에 이르는 수치다. 또한,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공시생’에는 연관검색어로 ‘공시생 자살’이 제시된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비관하며 자살했다는 기사는 단순히 하루 이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 시험을 선택하기를 강요하면서 정작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겪는 심리적 문제를 방조하고 있는 사회는 이제 변해야만 한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야 하는 사회를 지적하는 것은 추상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이 이유도 모르는 채 음지로 밀려나고, 음지로 밀려났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몇십 만 명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사회가 짊어진 현실이며,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맞이하는 사회 또한 현실이다. 지금 그 현실을 돌아봐야 할 때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노량진으로 향하고 있다.

인하교지편집위원회 최광민  dkee22@naver.com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