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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탄핵심판일, 그 날 헌법재판소 앞에선..
지난 3월 10일 안국역 근처 운현궁 맞은편 길목에서 경찰과 시위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서동령 기자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판결이 3월 10일 이뤄졌다. 많은 언론과 국민들이 탄핵 인용 여부를 예측하며 헌재의 판결에 시선을 집중했다. 판결 당일 국내외 많은 방송사들은 이정미 전 재판관의 선고문 발표를 생중계 했다. 오전 11시 판결문의 주문(主文)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에 따라 탄핵이 결정됐다.

탄핵이 인용되자 많은 국민들은 환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역에서 판결을 TV로 지켜보던 일부 국민들은 “만세”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환호한 것은 아니었다. 판결 당일 헌재 앞에선 탄핵 결정에 불복하는 국민들의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태극기를 손에든 그들이 분노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헌재로 향했다.

오후 12시 안국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헌재로 출발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잠시 차를 정차한 버스기사는 “이 버스는 종로로 가지 않고 서울역으로 바로 갑니다”라고 말했다. 탄핵 판결로 인해 광화문과 헌재 일대에 많은 시민들이 모이자 혼란을 우려한 당국이 ‘갑호비상령’을 시행하며 교통을 통제한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전철로 환승해 안국역으로 향했다.

오후 2시 안국역에 도착하니 경찰들과 의경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역내 벽에는 좌측 ‘비상국민행동’, 우측 ‘탄기국(국민저항본부)’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태극기를 돌돌 말아 집으로 향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지상으로 나가자 멀리서 태극기 집회에서 나오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많은 경찰들과 의경들이 시민의 안전을 위해 대열을 갖춰 대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안국역 5번 출구에 가까워지자 본격적으로 집회 현장의 분위기가 전해졌다. 여러 대의 경찰차와 더불어 구급차들도 보였다. 태극기를 들고 있던 한 시민은 “이게 다 민주당 때문”이라며 탄식하기도 했고 음주를 한 것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우리나라가 이제 망하려나 보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 집회 중앙으로 가려 했지만 안전을 우려해 경찰이 설치한 차벽으로 인해 접근하지 못했다.

집회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근처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건물 앞에선 얼굴에 피가 흥건한 남성이 경찰들에게 경위를 설명하고 있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많은 인파에 떠밀려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본 집회는 규모가 상당했다. 어림잡아 천여 명 이상은 될 듯한 시위자들과 그에 상응하는 수의 경찰들이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었다. 경찰들은 차벽을 주축으로 헌재로 향하는 시위자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진입을 시도했다.

두세 개의 건물 옥상을 더 올라가보고 내려오자 한 무리의 시민들이 “태극기 집회, 이쪽으로 따라오세요”라며 소리쳤다. 필자도 그 무리의 사람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뒤 좁은 골목길을 통해 집회의 중심과 이어지는 운현궁 맞은편 길목에 도착했다. 이 길 또한 경찰들과 시위자들이 대치하고 있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집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길목 옆에는 기자들로 보이는 네댓 명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필자도 그들 옆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때 “왜 찍어, 왜 찍냐고”하는 할머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한 할아버지가 기자로 보이는 한 남성의 카메라를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어 한 무리의 할아버지들이 남자를 붙잡으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됐다. 다행히 근처에서 대기하던 경찰들이 대열을 갖추고 시위대를 저지해 남성을 보호했다. 북새통 속에 카메라를 잃어버린 남성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주워 남성에게 돌려줬다.

집회의 중앙에는 ‘탄핵 무효’,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쓰인 탄기국의 트럭이 눈에 띄었다. 확성기에서는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연설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위에 참여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다를바 없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간혹 각목을 손에 쥔 참여자들도 눈에 띄었다. 집회가 격렬해지면서 중상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구급차가 부상자를 수송하기 위해 인파 속으로 나아갔다. 필자는 주변의 노인들과 구급차에 대해 말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누가 다쳤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고, 저 안에서 사람이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집회에서는 수십 명이 넘는 부상자와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집회가 과열되자 많은 인파 속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2시간여가 넘도록 집회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두 손으로 카메라를 꽉 쥐고 집회를 빠져나왔다.

현장에 가보니 많지는 않았지만 30대, 40대 참여자도 존재했고 드물게 태극기를 든 20대 참가자도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참여자가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거리에 나온 적 없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태극기를 들고 시위를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세대별 성장과정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50대 이하 국민들은 민주화운동이라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한 세대다. 이들의 삶에 있어 중요한 가치는 민주주의라 말할 수 있다. 반면 60대 이상의 국민들은 실제 전쟁과 가난을 겪으며 자란 세대다. 그들에게 생존은 말 그대로 전쟁과 굶주림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은연 중 안보와 발전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번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가치관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그 위협이 그들을 태극기집회로 이끌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국민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고, 다름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태극기집회의 자유도 보장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집회는 비폭력적이고 법을 준수해야 한다. 필자가 본 집회현장에선 위험한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경찰이 차벽으로 세운 버스 위로 올라간 시위자도 있었으며, 기자들에게 욕설을 하는 참여자도 보였다. 붉은 얼굴로 술 냄새를 풍기던 할아버지들도 기억에 남는다. 이날 발생한 안타까운 사망도 격렬한 시위로 인한 사고가 원인이었다. 한 남성이 경찰 버스를 타고 차벽으로 돌진하면서 설치된 스피커가 떨어졌다. 이 사고로 인해 70대 김 모 씨가 숨졌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고들을 예방하기 위해선 평화적인 집회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 약 5개월간 계속된 촛불집회는 평화집회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현장에 배치된 의경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또한 비가 오는 날 의경에게 우산을 씌워준 시민들이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집회 후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기도 했다. 이렇듯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된 촛불집회는 성숙한 집회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태극기집회는 평화집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집회에서 발생한 사고들로 미뤄볼 때 성숙한 집회의식의 필요해 보였다.

서동령 기자  seodongr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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