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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지원 끝난 용현시장 내의 ‘청년 몰’은 어떻게……

“용현시장에 청년상인들이 모여서 가게를 차렸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됐지?”라는 신문사 선배의 얘기에 나 또한 궁금증이 생겼다. ‘청년들이 전통시장 안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갖고) 용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봤다.

용현시장은 생각보다 학교에서 가까웠다. 후문을 나와 용현시장으로 가는 길은 새로웠다. 익숙한 후문가를 지나 경인고속도로 지하차도를 통과하니 학생들이 생활하는 자취방이 즐비해 있었다. 하지만 후문가와는 달리 적막한 고요만이 있었다. 마치 경인고속도로를 경계로 다른 곳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얀 벽의 집은 칠이 벗겨져 회색의 시멘트가 드러나 있었다. 간간이 새어 나오는 불빛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살지 않는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20분 정도를 더 걸어가니 과일을 파는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용현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 맞은 편에는 금빛을 보이며 승천하려 하는 용현시장의 마스코트 용이 시장을 굽어보고 있었다. 청년상인들은 용과 같이 승천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았다.

1963년에 형성된 용현시장은 인천의 역사에서 상권이 가장 활발하게 형성된 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전통시장이다. 용현시장은 1960년대 수봉산 일대에 이주 촌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졌다. 개설 당시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 지역과 제물포 지역 주민, 인하대학교 학생들과 용현동 독쟁이 일대 주민들이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평일의 여느 전통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게 용현시장 내부는 한산했다. 소리가 들려온다 치면 몇 없는 손님을 잡기 위한 상인들의 외침이 전부였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정육점 주인은 “한동안 AI 때문에 난리더니 이제는 구제역이 전국에 퍼지니까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어요. 게다가 저 높으신 분들도 말이 많이 나오고 있고 아주 최악이에요. 어서 구제역이 잘 마무리돼서 다시 손님들을 보고 싶어요”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구제역이 확산되니 고기를 구하기도 어렵고, 팔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추운 날씨에 빨간 정육점 불빛 아래 서 있는 탓인지 주름진 구릿빛 얼굴이 더욱 쓸쓸해 보였다. 정육점을 지나면 있는 생닭과 생오리 판매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상인은 “AI가 퍼졌다는 것이 뉴스에서 나오기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닭과 오리를 조금밖에 못 팔고 있어요. 이 상황이 지속되면 가게를 운영하기가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익혀서 먹으면 인체에 해가 없다고 들었는데도 사람들이 닭이나 오리를 찾지 않으니 죽을 맛이에요”라고 말했다.

정육점을 지나쳐 채소 가게 앞을 지나면서도 손님이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손님을 기다리며 미나리를 정리하고 있는 할머니는 나를 손님으로 착각해 무엇을 사러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없어서 못 판다고 난리가 났던 달걀 역시 가게에 쌓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용현시장 중앙대로를 3~4번 오가며 청년상인들이 운영하는 곳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님을 기다리며 고개를 들었다 내려놓는 상인들과 고소한 향기를 내며 구워지고 있는 땅콩이 전부였다. 그 중 한 곳에 들어가 나는 “청년들이 사업을 하는 ‘청년 몰’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어딘지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상인은 “예전에나 있었지 지금은 다 없어진 거로 알고 있다. 그래도 가보고 싶으면 여기 중앙도로 말고 저 쪽 골목으로 가보면 있을 것이다”라며 길을 알려줬다.

상인이 알려준 곳은 시장의 중앙거리를 한참 벗어난 외진 골목이었다. 그곳에서 청년 점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Lunch Pic It’이라는 간판 아래 불 꺼진 빈 공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문을 잡고 열어보려 했으나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수북이 쌓인 먼지로 오랜 시간 아무도 찾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주변에 있어야 할 다른 청년 점포들은 간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주위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상인에게 나는 “여기 있던 청년 점포들은 어디로 간지 아시나요”라고 여쭤봤다. 상인은 “여기 골목으로는 손님이 많이 안 다녀. 저기 대로 쪽으로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저번에 들어보니 월세도 비싸고 손님은 많이 안 다니니까 힘들다고 하더라고” 라며 사정을 얘기했다.

청년 몰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고 혹시 몰라 시장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골목에는 어르신들이 순대에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는 듯했다. 순대를 찌는 연기를 지나고 드디어 문을 연 청년 점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통시장의 여느 투박한 상점과는 다른 느낌의 점포였다. 외관만을 본다면 전통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 더 어울릴 듯한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베이지색 소파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자니 전통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커피를 받아서 마신다. 나쁘지 않다. 조용하게 여유를 즐기는 청년상인의 모습에서 나 또한 편안함을 얻는다. 이곳에서의 장사가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청년상인은 “시작할 때는 꿈이 많았죠. 그런데 손님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아쉽네요”라고 한다. 다시 바라본 청년상인의 얼굴은 고민이 가득했다.

카페를 나오니 취재가 끝나고 만나기로 했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온다. 언제 끝나냐는 친구의 말을 무시한 채 전통시장의 청년상인들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는다. 친구는” 전통시장이라는 말 자체가 가기 싫게 만드는 것 같아. 전통시장이라고 하면 시끄럽고 땅바닥에는 생선이 떨어져 있을 것 같잖아. 그리고 굳이 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원하는 게 있다면 집 앞에 있는 대형마트를 가면 되는데 일부러 전통시장으로 와야 할까”라고 답한다. 내가 실제로 바라본 시장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전통시장을 방문하기 전의 내 생각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카페를 바라본다. 전통시장에 어울리지 않았다. 청년 몰은 멀리서 바라보면 전통시장에는 어울리기 힘든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청년상인들을 지원하는 청년 몰 사업은 용현시장만의 사업은 아니다. 이미 서울시는 현재 3곳의 시장(구로시장·정릉시장·증산시장)에 입점한 24개 점포를 지원하고 있다. 각 시장당 2억 원씩, 총 6억 원의 예산으로 초기 인테리어 비용, 임대료, 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청년상인 점포가 폐점했다. 초기 보증금과 임대료를 지원해준다는 정부의 말에 창업하더라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현재의 청년 몰 사업은 보여주기 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청년 몰 사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창업 점포 수 혹은 액수에 집중하기보다는 자립할 수 있도록 수익상품 개발과 경영전략과 같은 사후관리에 좀 더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전문가인 오승훈 서울시 신시장 모델 육성사업 자문위원은 청년상인이 전통시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기존상인과의 관계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청년상인 지원제도도 청년에게는 지원이지만, 기존 상인에게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해 서로 이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의 대안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다.

10곳으로 시작했던 용현시장 내의 청년상인 몰은 이제 커피를 파는 ‘카페 문득’만이 남아 있었다. 청년들을 통해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동시에 취업난을 해결하겠다는 청년상인 지원 사업은 용두사미로 끝난 것 같았다. 시장을 나오며 다시 한번 용 동상을 보았다. 들어갈 때 와는 달리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이무기로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강성대 기자  12133155@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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