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스케치]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내 안의 부처를 찾는 시간, 템플스테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정부는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고민했다. 고민의 과정에서 템플스테이라는 산사 체험 프로그램이 고안됐고, 시행 과정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됐다. 한국에 불교가 들어 온지는 약 1700년. 그 동안 불교는 한국의 땅에 정착했고 역사를 관통했으며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처럼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었다. 지금 템플스테이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문화 체험으로 자리 잡았다.

 

첫째 날.

출발을 위해 친구와 함께 버스터미널에 모인 것은 오전 10시경, 두 사람의 짐은 세면도구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이 전부였다. 그렇게 충청남도 공주에 도착해 버스를 갈아타고 총 3시간이 걸려 갑사에 도착했다. 계룡산의 중턱에 위치한 갑사는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등산객과 사찰을 찾는 손님들로 꽤 북적거렸다. 생각보다 사찰의 대중적인 모습에 당황한 우리들을 보며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께서는 우리를 숙소가 있는 팔상전으로 안내해주셨다. 그 후 담당 스님께서는 스님과 같은 복장이 아니라 여름용 템플스테이 의복이라며 조끼와 바지 두 벌씩을 내주셨다. 사찰 주변에는 자연 뿐이었고 심지어 휴대폰 전파도 잘 터지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만 귓가에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6시까지 산속에서 느지막이 여유를 즐기다가 공양간으로 내려갔다.

내가 생각한 공양은 스님이 음식을 그릇에 적당히 덜어주시며 절제와 금욕을 배우고 스님과 함께 식사를 한 뒤에 마지막에는 그릇에 물을 부어 마시며 식사를 마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공양은 뷔페식으로 자율 배식으로 진행됐다. 다만 사찰 음식답게 오신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배식 후 공양간에 앉아 식사를 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스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다른 곳에서 따로 식사를 하시는 것 같았다.

식사 후 저녁이 되니 숙소에서는 벌레가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기에 나는 평소와 달리 벌레를 죽이거나 내쫓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신 스님께서는 모기향과 에프킬라를 가져다 주시고 “불교에서는 쓸 데 없는 살생을 금지할 뿐”이라는 말씀을 하시곤 다시 돌아가셨다. 그렇게 우리는 벌레가 없는 쾌적한 방에 눕게 됐다. 스님께서 불가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하셨기에 평소보다 이른 잠을 청했다.

 

둘째 날.

사찰의 아침은 종소리의 울림과 함께 시작됐다. 사찰에서는 만물을 깨우기 위해 3번 종을 친다. 첫 번째는 하늘의 생명들을 깨우고 두 번째는 땅의 생명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다의 생명들을 깨우기 위해 타종을 한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지만 사찰은 예불을 드리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아침 공양은 어제와 같았다. 달라진 점이라면 어제 저녁 공양할 때 닫혀있던 문이 열려 있어서 식사하시는 스님들의 모습을 뵀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스님들은 일반인들과 따로 식사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아침 공양이 끝나고 템플스테이의 다른 참가자들이 사찰에 도착했다. 우리는 참가자들과 함께 사찰 소개와 더불어 사찰 생활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사찰소개는 갑사를 한 바퀴 돌며 사찰 건물 각각의 용도에 대해 알려주시는 것으로 간략하게 끝났다.

사찰 생활에 대한 안내는 대웅전에서 이뤄졌다. 대웅전에서는 부처의 앞을 지나갈 때 합장을 하고 지나갔다. 부처에게 예를 표하는 의미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 후 절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 전에 스님께서는 각 개인들에게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중 기독교는 나 하나였고 타 종교의 신에 대해 절을 하는 것은 좀 마음에 걸렸다. 그때 나를 보시고 스님께서는 “부처는 깨달은 자이지 신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스님의 말씀이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신기했다. 그 말씀 뒤에 “불교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고 종교라기보다 학문에 가깝다”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불교의 절은 ‘오체투지’라고 칭한다. 양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땅에 닿게 하며 절을 하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이것이 스스로를 낮추며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세라고 말하셨다. 한 두 번은 어렵지 않았으나 여러 번 해보니 전신운동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절을 배우고 다시 공양간에 가서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저녁이 됐다. 저녁은 참가자들 간의 차담이 이뤄졌다. 내가 함께한 참가자들은 직업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직업은 교사, 농부, 은행원 등이 있었고 나이는 20대에서 50대 까지였다. 사람들의 템플스테이 참가 목적 또한 다양했다. 나와 같이 무엇인가 해답을 이곳에서 찾으려 참가한 사람도 있었고 휴식을 위해 참가한 사람도 있었다. 서로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편안했고 여유가 보였다.

 

셋째 날.

마지막 날도 불가의 아침은 타종으로 시작했다. 어제와 다른 점이라면 아침 예불을 드린 점이다. 나는 스님들이 예불을 드릴 때 하시는 중얼거림이 무엇인지 몰랐고 더욱이 뜻을 가진 것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알고 보니 스님들은 반야심경을 외우고 계시는 것이었고 그 속에는 각자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예불은 나에게 어렵기보다는 생소했고 신기했다.

아침 예불 뒤에는 108배가 진행됐다. 스님이 반야심경으로 배경음악을 깔아주시고 우리는 오체투지로 108번 절을 했다. 오체투지를 108번 하니 내 몸은 땀에 적셔졌다. 더군다나 절만 한 것이 아니라 절을 한 번 할 때마다 염주를 꿰며 108보주까지 만들어서 피곤이 더했다. 스님께서는 “108배 또한 욕망을 버리며 깨달음을 얻으려는 과정이기에 횟수는 연연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108배를 한 뒤 우리는 스님과의 차담을 하기 위해 다시 숙소로 향했다.

스님과의 차담은 문답형식이었다. 스님은 먼저 농담을 건네시며 경직된 분위기를 푸셨다. 연령마다 고민은 다양했다. 은퇴 후 생활, 선택한 직업에 대한 의구심, 사랑 등으로 차담이 진행됐다. 스님께서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스님의 말씀은 “현재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며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귀하게 여겨라”였다. 차담 후 집에 가기 전 경내를 한 바퀴 다시 둘러봤다. 사찰에서의 지금 이 순간이 소중했고, 이전과는 다른 충만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경내를 감싸던 계곡물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며 나의 첫 번째 템플 스테이는 여기서 끝났다.

 

마치며

‘종교가 아닌 학문’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 두 가지는 내가 템플스테이를 통해 바뀐 불교에 대한 생각이다. 템플스테이는 그동안 내가 알던 불교에 대한 지식과 생각이 모조리 틀렸음을 알려줬다. 굳이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와 깨달음은 삶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지 않는 종교라 해서 비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모든 이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영현 기자  13nyh@naver.com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영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