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은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학내 갈등을 겪고 있다. 대학 발전은 갈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협력의 원동력인 신뢰는 특정 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발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요구된다. 신뢰는 구성원 간 상충되는 이해를 조정하고 서로 협력하도록 하는 문화이자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줄여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신뢰의 가치가 인정될 때 공동체 의식은 공고해진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결정,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태도는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대학 발전을 위한 기초 자산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이는 비합리적 선택이다.     

실용성을 기준으로 한 인문학의 축소 또한 자기 모순적이고 비합리적 선택이다. 실용성을 판단하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사실 인문학의 실용성에 관한 논쟁은 오래되었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우주의 일반적 성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이 때문에 서구에서 최초의 철학자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명상이 비실용적이라는 악평에 대해 그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올리브 수확량 예측에 활용함으로써 철학이 결코 비실용적인 학문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인문학의 실용성은 일반적으로 과소평가되어 왔다. 사람들은 공학적 지식과 기술이 재화 생산의 최종 단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것의 실용적 가치를 쉽게 인정한다. 그렇지만 공학적 지식과 기술은 인문학의 사유와 예술적 상상력의 풍토가 없다면 더 이상 생산 능력을 보장할 수 없다. 또한 인문학의 실용적 가치는 희소한 자원을 둘러싼 갈등을 조절함으로써 그것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데 있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재화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가? 등에 대한 사유와 인식이 없다면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 삶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다. 인문학이 지닌 가치는 삶의 안전과 관련된다. 인문학의 손익을 계산한다면 비용에 비해 편익이 훨씬 크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연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된 후에야 그 가치를 인식하듯 인문학도 사라진 후에야 가치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다.  

현재 우리 대학의 구조조정 논의는 이래저래 이익보다는 손해가 나는 방향을 향해 가는 것 같다. 대학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 과감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사고방식, 지식을 활용하고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 위험을 감수하고 개척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러한 매력이야말로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특성화고등학교와 차별화된 대학의 경쟁력이다. 유효성이 오래가지 않을 특정한 직업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졸업 후 학생이 갖게 될 다양한 직업과 현실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기초역량과 지속가능한 사회공동체 발전을 이끌 사고능력과 소양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대학교육의 목적이다. 우리 대학이 이러한 교육 목적에 맞게 변화 방향을 설정하고, 구성원들의 신뢰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냄으로서 그것을 현실화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