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세계는 어느 새부터 ‘융합’을 강조하면서 노동시장에 인문학과 공학의 조화를 이룬 인재들을 요구하고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아마 스티븐 잡스의 역작 ‘아이폰’에 깃들어 있다고 하는 인문학적 감성과 IT기술이 대두되면서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인문학이 자리한 위치란 바람 앞의 등불이다. 낮은 취업률, 실용적이지 못한 학문으로 취급받아 교육부 주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낮은 지표를 차지해 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로 취급받기 일쑤다. 향후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현재의 기업 및 사회 수요와 대학 졸업자들의 공급엔 미스매치가 존재해 이를 균형적으로 맞추고자 하는 교육부 지침 하에 각 대학에서는 전국적으로 인문계열을 축소 및 폐지·통합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추세다. 이에 각 대학들은 학내 구성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A등급 평가를 받은 대학조차 정원 감축의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재정지원에 참여하고자 자율적으로 조율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행태에 대해 누구의 책임이라고 전적으로 돌리기엔 가혹하다. 실용학문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를 보완해 취업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제도화하지 못한 학교당국과 교수들의 잘못도 있을 수 있고, 취업을 우선순위로 두기보다 당사자들이 향유하고 싶은 학문만 접한 나머지 세상이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하지 못한 학생들의 취업률 저조도 한몫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즘 세상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일까. 잡스는 실용학문인 IT기술 토대위에 인문학을 활용해 감성적인 기기를 만들어냈다. 인문학에서의 실용학문은 무엇일까. 부족하고 모자란 필자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해왔던 개발은 기술 중심이었고, 이제는 그로부터 벗어나 인문·과학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잡스처럼. 

 최근 인문학 열풍은 CEO들에게서 시작됐다. 경영자라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 간에 소통하고 조직을 이끄는 능력이 필요해진다. 인문학은 그런 점에서 큰 안목과 지혜를 준다. 또, 살다보면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좀 더 재미있는 삶이 필요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욕구가 생긴다. 식욕이 해결된 뒤 그렇게 그리스 철학이 시작됐다.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행복한 삶인 것인지. 그런 문제. 인문학이 당장 밥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건 아니지만 밥을 넘어서서 보다 인간의 풍족한 정신활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테크놀로지만 강조한다거나 기능상의 이점만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는 없다. 인간미가 없다. 이처럼 사람의 감성, 가치관, 습성 등을 생각하고 연구하는 노력은 지속돼야 할 것이다.

 위 상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의견을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추구해왔던 것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실용적 지식과 결합해 다른 사람들, 다른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다. 그것이 반드시 인문학이라는 틀을 가진 문사철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인문학은 문사철이 아니라 인간이 향유하는 거의 대부분이라고 보면 옳을 듯 싶다. 문사철은 그저 그것들을 만들고 즐겼던 일부 전문가들의 영역일 뿐이고. 인간이 만든 학문의 영역은 어쩌면 경계가 없는 것이다. 피카소 그림이 문사철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문학의 범주에서 뺀다면 그 어찌 모순인가. 또, 사람의 감성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것이 종교인데 이를 인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따라서 실용지식을 쌓는 데 등한시되면 안 된다. 그가 대학에서 철학, 문학, 역사학 같은 인문학 주제들을 배웠다고 해서 실용지식이 없다면 그의 사회생활은 꽤 문제가 많을 것이다. 인생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본인이 선택하고 감당해야한다. 반대로, 공학을 공부한 사람이 자기의 전공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자기 분야에서 직업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인문학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그는 인간미가 없을 것이고 여러 관계 속에서 힘들 것이다. 개별 학문마다 가치가 있다. 학내 구성원들은 머리를 맞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는 현명한 타협안을 하루 속히 제시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