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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사태와 할 말 잃은 일본 역사왜곡 대응

정부가 자학적인 과거사 기술을 멈추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작성해야 한다면서 이를 강행추진하고 있다. 집권여당도 현재의 검인정교과서가 편향교과서라고 발맞추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급기야 국정교과서 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처음에는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를 비판하는데 주력하는가 싶더니만, 급기야 이에 찬성한다는 사람들도 맞불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다소 상황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90여명의 교수가 국정교과서문제에 대하여 반대성명을 내고, 교수협의회가 이에 찬성하는 성명을 내자,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성명서를 내는 것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였다. 학생들도 여러 가지 입장표명이 이어지고 있다. 국정교과서 사태를 시작한 사람들이 말로는 걱정하면서도 실은 의도했을지 모를 국론의 분열이 이어지고 있다.

국정교과서 사태는 정치적 블랙홀로서의 흡인력도 대단하다. 일반해고도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사정합의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이고, 민의의 대변자들을 뽑는 문제와 직결되는 선거구 획정문제가 답보를 거듭하고 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야당의 정치개혁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언론의 뒷방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정교과서 사태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해 앞으로 우리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초대형악재이기도 하다.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97년경부터 자학적인 과거사 기술을 멈추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1945년 이후 군국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진행된 일련의 민주화 등 전후 개혁을 자학사관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극우적인 역사교과서 작성을 연례적으로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일본정부는 학습지도요령’, ‘교과서용 도서의 검정기준등을 마련하여, ‘편향교과서를 시정한다는 명분으로 극우교과서 만들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민족의 역사를 자학하지 않는 새로운 역사교과서, 언필칭 좋은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식민지배의 필연성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교과서의 내용은 황국사관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우리 한민족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36년에 걸친 식민지배는 저들의 말처럼 서세동점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패전 후의 연합국에 의한 일련의 개혁은 전승국이 강요한 것으로 억울하다는 것이다.

역사의 해석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의 기술을 자학으로 여기고 특정세력이 원하지 않는 사실의 기술이 있거나 없는 경우에는 편향교과서라 낙인하는 것은 자유주의 사회의 존립기반이 될 가치상대주의를 멀찌감치 뛰어넘는 가치절대주의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본의 일련의 이른바 새로운 역사교과서 운동을 역사왜곡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품격 떨어지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 우리의 국정교과서의 사태에서도 이런 일이 데쟈뷰되고 있다. 1948년 북한정권의 수립을 풀 네임을 써서 기술한 것은 편향교과서의 증좌로, 한때 카리스마 넘치는 대통령의 상징으로 국정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선글라스 낀 전직대통령의 사진은 편향교과서들이 조장하고 있는 특정인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메이킹으로 홍보되고 있다.

교과서 기술의 역사는 국정교과서로부터 검인정제도로 그리고 자유교과서제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1974년까지는 국정교과서를 쓰다가 그것이 다원주의적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2011년부터는 검인정교과서제로 변화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검인정제도를 취하면서도 학습지도요령등 일정한 지침을 강요하여 국정교과서처럼 운영함으로써 국제적 빈축을 사지 않았던가. 결국 앞으로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하여 할 말을 잃게 된 셈이니 참으로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역사왜곡이라고 하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더구나 최근 일본은 안보관련 법제를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강행·통과하였다. 그 내용은 한반도주변을 비롯한 중동지역에서의 미군의 군사행동을 후방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미군의 후방지원을 명분으로 하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도 점쳐지고 있다. 후방지원의 내용도 급유와 급수와 같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탄약보급까지 확대하였다. 뿐만 아니라 북한지역 상륙의 경우 대한민국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며, 법리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밝히는 등 전쟁에 휩쓸릴 개연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비록 대미 종속 하의 제한적 집단적 자위권으로 보폭을 넓힌 것이라고는 하지만, 전쟁에 휩쓸리고 미일관계가 어긋나게 되어 대미 종속 이라는 병뚜껑이 열리면, 일본의 역사왜곡은 교과서 왜곡이 아니라 현실을 왜곡하는 침략의 밑그림과 이데올로기 교서로서 작용할 것이다. 우리의 국정교과서 사태가 한일관계에 있어서 초대형 악재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련의 국정교과서 사태에서 대학의 역할도 막중하다. 무엇보다 건전한 공론장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서로의 입장을 표명하고 존중하되 가치상대주의의 기초는 팩트의 왜곡에 기초하지 않을 것, 팩트에 기반한 입장의 표명이 기초되어야 할 것이다.

이경주 교수  inha@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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