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꾸는 꿈 - 인하프레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것이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들판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가을 학기는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사계절을 지내다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한국경제를 사계절에 빗대면 고도 성장기인 봄, 여름을 지나 가을녁 들판에 서 있다. 그리고 저 멀리서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다가오고 있다.

세대와 계층 갈등, 청년실업, 노령화, 구조조정 이슈가 바로 그것이다. 나라 밖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간의 합종연횡이, 그리고 중국의 성장세가 무섭다. 이변이 없다면 겨울바람을 피할 재간은 없어 보인다. 우리경제가 겨울을 살짝 맛 본 적이 있다. 바로 1997년 IMF위기였다. 겨울은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고도성장 뒤 다가오는 경기하강기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망연자실하기보다는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번 겨울이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봄이 오고 사계절은 또 되풀이될 것이다.

가을은 등산의 계절로 알려져있다. 등산객에게 내려올 산을 왜 그리 힘들게 오르냐고 물으면 정상에서 느끼는 쾌감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런 쾌감을 계속 맛보려면 하산시 방심해서는 안된다. 급히 내려오다 무릎을 다치면 다시 등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울이 임박하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년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둡다는 비관론이 있다. 헬조선도 그 연장선상이다. 이제 더 이상 먹거리가 없는 흉년에 접어들었다는 속단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급하게 이것저것 들쑤시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머리를 맞대고 차근차근 해결방안을 찾아볼 때이다. 금년이 흉작이라도 살다보면 좋은 날이 다시 오기 마련이다. 반면에 아무리 계절이 좋더라도 모두가 풍작의 기쁨을 맛보는 것도 아니다. 준비된 자만이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색과 그럴 시간이 필요하다. 창의력과 통찰력은 고독한 사색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꿈을, 일본은 아베몽을 꾼다고 한다. 반면에 이런 꿈을 꾸는 한국의 지도자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적이 있다. 대학도 신임총장이 부임할 때마다 새로운 비전을 꿈꾼다. 그러나 단기성과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3년짜리, 4년짜리, 길어야 5년짜리 꿈이었을 뿐이고, 돌이켜보면 다람쥐 쳇바퀴돌기에 지나지 않았다. 긴 시계의 꿈을 꾸어보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대학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가을에 나만의 꿈을 꿔보자. 남들이 꿔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왕이면 긴 꿈을... 혼자만의 적막과 사색이 주는 운치 가운데에서... 먹을 것 없고, 움츠린 겨울밤에 아등바등 거리기 전에, 어느새 훌쩍 닥친 봄날에 허둥대며 아무 씨앗이나 뿌리지 말도록 말이다. 주변의 시선을 더 이상 의식하지 말자. 스펙만능주의(almighty spec)에서도 벗어나기 바란다. 여러분의 잠재력은 스펙으로 측정되기에는 훨씬 크지 않은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보자. 이왕이면 그 꿈의 동반자도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떨어지는 낙엽, 선선한 바람이 아직은 풍요롭게 느껴지는 이 가을에 말이다.

한재준 inha@inhanews.com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