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농부가 여름내 흘린 구슬땀들이 모여 값진 결실을 맺는다. 이때쯤이면 장터에도 가을의 향기가 밴 알찬 수확물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기르고, 먹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 하는 그곳, 도시형 장터 ‘마르쉐 양재@’를 찾았다.

▶ 숲속 나들이를 가다
 마르쉐(marche)는 프랑스어로 시장, 장터를 뜻한다. 지난 2012년 10월 여성환경연대의 주최로 처음 시작된 마르쉐는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만드는 도시형 장터로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주(확인)에 열린다. 보통 뒤에 장소 이름을 붙여 어디서 열리는지를 나타낸다. 기자가 방문한 ‘마르쉐 양재@’는 고층건물이 빽빽이 자리한 회색도심 속 양재시민의 숲에 위치해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퍽퍽한 도시 속에서 작은 여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자는 ‘마르쉐 양재’@를 찾아가는 길목에서부터 숲속 나들이를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숲으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 있던 노오란 옷을 입은 포스터 속의 ‘가을이 오는 숲에서 풀밭 위의 점심식사 어떤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풍 같은 시장’이라는 문구가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점차 숲에 가까워질수록 재즈 연주 소리가 들려왔으며 저 멀리 한가롭게 마르쉐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숲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가족, 연인, 친구끼리 만찬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드높은 나무 아래서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으며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낯선 풍경이었다. 과연 복잡한 도심 속에 이런 곳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떨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개강한 지 어느덧 3주가 훌쩍 지나가버린 지친 일상 속에서 작은 여유를 발견했다.
 
▶ 마르쉐에 열광하는 이유
 이날 ‘마르쉐 양재@’에는 무려 *명(확인). 왜 사람들은 마르쉐에 열광하는 것일까. 마르쉐가 가진 장터로서의 특징은 매달 봄나물, 풀, 감사 등 바뀌는 주제에 따라 준비를 하기 때문에 각 상점별로 서로 다른 음식을 팔더라도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날의 주제는 ‘숲속마르쉐’였는데, 어느 가을날 숲속에서의 소풍이라는 주제에 맞게 판매자들은 정성으로 키운 수확물을 내놓았다. 가을 소풍에 어울리는 직접 싼 엄마표 단호박 연잎 도시락, 일반 감귤보다 비타민C가 3배나 풍부한 청귤 에이드 등 제철을 맞은 유기농 음식이 숲속을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몸만 있으면 소풍을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마르쉐에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 마르쉐 곳곳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재배했는지, 음식 재료로는 무엇이 들어갔는지 판매자와 소비자가 정겹게 묻고 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례로 경상북도 봉화의 대안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정성스레 키워낸 닭의 알은 학생들이 직접 판매자로 나서 자신이 달걀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이 같은 마르쉐 장터는 판매루트를 마련하기 어려운 도시농부들에게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된다. 이번에 두 번째로 마르쉐에 참여했다는 도시양봉가 노신영 ‘히스허니’ 대표는 “도시농부로서 딱히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데 마르쉐는 좋은 기반이 된다”고 답했다. 직접 손수 기른 유기농 채소를 판매하고 싶은 도시농부의 욕구와 도심에서 믿을만한 상품을 즐기고 현대인들의 건강한 욕구가 만나 이곳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 ‘맛’있는 마르쉐
 무엇보다 마르쉐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맛의 공존이 아닐까. 눈으로 보는 맛부터, 입을 기쁘게 하는 ‘맛’있는 맛까지 어느 하나 훌륭하지 않은 맛이 없다. 특히 자연 그대로의 맛이야 말로 진정 맛있는 맛이라는 생각은 판매자, 소비자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다.

- 자연주의 마인드… 로푸드부터 세계이색음식까지
 이러한 자연주의 마인드는 마르쉐에서 판매되는 음식에서 나타난다. 가열하거나 가공하지 않은 ‘로푸드(raw food)’, 이른바 생식으로 판매 중인 로푸드펌이 대표적이었다. 건강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로푸드는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기자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인 ‘당근 케이크’를 구입했다. 아몬드와 피칸이 살포시 올라간, 하얀 코코넛 가루로 마무리된 당근 케이크는 한 눈에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한 입 베어 물자 생당근 특유의 달달하면서도 살짝 떫은 맛이 맴돌았다. 당근케이크를 판매하는 ‘로푸드펌’ 대표는 “당근 주스를 만들고 난 뒤 남은 찌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며 “섬유소가 가득한 맛”이라고 홍보했다. 다이어트나 건강식, 특히 가공된 인공적으로 단 음식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계시는 어르신 분들에게 안성맞춤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르쉐에 방문하기 전부터 기대했던 ‘콩버거’는 이날 판매되지 않았다. 콩버거는 패티로 콩고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게 남았지만 대신 우유, 버터, 계란이 들어가 있지 않은 채식주의 건강빵과 사찰식 나물 비빔밥, 수제햄, 수제 치즈 등을 맛보며 다음번을 기약했다. 만화 ‘검정고무신’에서 기영이가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났던 추억의 맛, 아이스바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각종 이국적인 음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학기 ‘세계음식문화’ 수업에서 떠오르는 식재료로 소개됐던 ‘오크라’부터 중동의 크로켓이라 불리는 ‘팔라펠’, 독일식 김치 ‘사워크라우트’, 프랑스 가정식인 발라서 먹는 햄 ‘리예뜨’ 등 종류만 해도 족히 20개는 넘었다.
 다만 이곳에 있는 식품 대부분이 판매자가 손수 재배하거나 만들어 농약, 방부제,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만큼 유통기한이 짧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맛’있는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투자해 봐도 좋겠다.

- 가을을 담은 수공예품
 한편 마르쉐는 보는 맛도 만족스러웠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를 비롯해 남은 천을 가지고 만든 보자기, 에코백, 직접 빚은 컵 등을 구경하며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맘때 피는 국화와 천일홍을 엮어 만든 꽃다발은 최고였다. 특히 꽃다발 속의 감성적인 손 글씨 편지가 인상 깊었다. 꽃을 말려서 만든 고운 책갈피도 참 예뻤다. 주변에서는 버려진 원목을 재활용한 도마와 천연 방향제, 아로마 향초도 판매 중이었다. 기자와 함께 온 친구는 이날을 기념해 서로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하기로 했다. 기자는 천일염으로 만든 목욕소금을, 친구는 요새 들어 감정기복이 심한 기자에게 심신의 안정감을 주는 천연 로즈 제라늄 멀티밤을 선물했다. 장미향을 내는 허브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부담스럽지 않고 상쾌한 향이 마음에 들었다.
          
▶ 마르쉐에서 미래를 보다
 마르쉐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대형마트와는 분명히 다르다. 시중에서 상품가치가 없는 작고 못생긴 못난이 양파도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장바구니에 들어간다. 마르쉐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적합한 도시형 장터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미래에 대한 투자가 남다르다. 일례로 마르쉐에서는 개인 접시나 장바구니, 도시락, 텀블러 사용을 권장한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판매부스 자체적으로도 일회용 사용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혹여 물품을 들고 오지 않았다면 보증금을 받고 필요한 물품을 대 해주고 있었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이 같은 의미 있는 캠페인은 때때로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날 마르쉐에 참여한 한 시민이 그릇 뺨치는 텀블러를 미안해하며 사과하자 에이드 판매자는 “괜찮아요. 가져오신 텀블러 가득 채워드려야죠”라고 답하며 양쪽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더랬다. 우리 전통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정’을 마르쉐에서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마르쉐 한 쪽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주도 하에 분리수거, 설거지 작업이 진행 중이었으며 올해로 3살을 맞은 마르쉐를 기념하며 ‘마르쉐의 3가지 보물’이라는 제목으로 시민 투표도 이뤄지고 있었다.

 최근 이러한 장터문화의 성황에 대기업들의 시선도 집중되고 있다. 마땅히 설 곳이 없는 소상공인이 그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느 가을날 회색도심 속 여유를 주는 녹색소풍, 이 소풍이 주는 의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강지혜 기자  jj030715@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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