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크러쉬’란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감탄을 하거나 흠모하는 감정을 말한다. 예쁘고 멋진 연예인을 보고 열광을 하는 여성 팬인 ‘여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여성이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점을 갖추고 있는 여성을 우상으로 삼는 것으로, 남녀사이의 호감과 같이 에로스에 기반을 둔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걸크러쉬라는 단어를 선두로 쓴 인기 유투버인 ‘제나 마블스’는 이를 세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 단계는 ‘너와 친해지고 싶다’이고 두 번째 단계는 ‘너를 닮고 싶다’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만이 에로스를 기반으로 한 감정인 ‘너와 사귀고 싶다’ 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세 번째 단계 외의 가벼운 걸크러쉬는 모든 여성이 한번 쯤 느껴보는 보편적인 감정이고 숨길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걸크러쉬라는 단어는 여성의 표현 범위를 넓혀줬다. 예전부터 여자를 우상으로서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말할 경우 성적 오해가 생길 수 있어 그 감정을 드러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걸크러쉬라는 단어의 등장으로 이러한 고민은 줄어들었다. ‘나 그 여자 좋아해. 이건 단순한 걸크러쉬야’라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적 취향이 동성은 아니지만 나는 이 여자에게 호감이 있고 좋아한다는 것을 걸크러쉬라는 단어 사용으로 드러낸다. 듣는 사람도 이를 단어를 단순히 호감 가는 여성, 우상이라고 이해하기에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의 팬임을 당당히 밝힐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걸크러쉬의 등장으로 씁쓸한 부분도 있다. 걸크러쉬라는 단어 뒤에 숨어버리는 사람들이 그 예이다. 흔히 가볍게 쓰는 걸크러쉬는 호모포비아 성격이 다소 강하다.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일은 ‘에로스에 기반한 감정’이 아니라 ‘우상으로서의 호감’이라는 전제 하에 말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여성을 에로스적 감정으로 사랑하지만 그 감정을 인정하지 못해 걸크러쉬라고 말하는 사례가 이에 속한다.

포털 사이트에 걸크러쉬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뉴스, 이미지 등 다양한 콘텐츠가 나온다. 이런 콘텐츠들은 걸크러쉬라는 단어를 고찰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 멋진 연예인에게 유행처럼 쓰는 수식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걸크러쉬라는 단어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 단어의 사용에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현해원  hhyun@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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