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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의 저편과 이편
  • 최현식(국어교육과 교수)
  • 승인 2015.09.0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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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궤열차'에서 이렇게 적은 이는 소설가 윤후명이었다. “한번 간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된 것이다.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저 세상에 가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두어야 한다”. 멋지지만 무서운 말이다. 뒤돌아볼 사랑도, 애틋한 그리움도, 그걸 가져온 이별의 설움도 없는 삶이라니.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명랑한 미래를 위한 과거의 부정도, 옛 연인의 부인도 아니니. 과연 소설가는 또 이렇게 적었다. “진실로 그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은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필요가 있다”.

협궤열차는 표준 궤간(軌間)보다 좁은 궤간을 사용하는 기차를 이르는 말이다. 윤후명의 저 소설 속 협궤열차는 옛날 수인선을 달리던 기차로, 인하대 가까운 남인천, 용현을 거쳐 안산의 고잔을 지난 후 수원에 가닿았다. 노선 내내 큰 도시도, 항만도 없는지라, 손님은 삼삼오오의 향촌민이기 쉬웠으며 분위기에 애달픈 연인들이 빈자리를 가끔 채웠다고 한다. 아마도 윤후명은, 또는 주인공은 수인선을 달리며 사랑과 이별을 동시에 나눴을 것이다. 그러면서 삶의 가없는 환희와 끝 모를 비극에 또 함께 몸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인선의 철거와 함께 저 고독에의 단련과 투척은 돌이킬 수도 도래할 수도 없는 경험이 되었다. 오직 그곳을 달렸던 누군가의 기억과 윤후명의 소설에서만 가뭇하게 달리는 협궤열차로 남은 것이다.

학생들의 응원과 학교의 노력으로 인하대역이 생겨났다, 그것도 내년부터 다시 달리는 수인선의 주요 역으로 말이다. 물론 오늘의 수인선은 협궤도 아니며 쓸쓸한 연선(沿線)을 통과하지도 않는다. 이른바 서해안 시대의 주축을 이루는 거대한 산업도시를 차례로 지나 수도권의 관문 인천역에 도달한다. 어느 곳에서는 땅 위를 달리겠지만, 학교 앞 지하 공사장이 보여주듯이 대개 땅 속을 질주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계절의 순환에 우리 삶과 인연의 변화를 맞춰볼 일도, 또 지나는 곳 아무데나 내려 들길과 산길을 쏘다닐 일도 없다. 학교 이름이 붙었다고 즐거울 일 없는 수인선의 귀환이라니 어쩐지 씁쓸하고 어지러운 심정이다.

하지만 그래서 새로 쇠바퀴를 굴리는 수인선, 또 우리 학생들이 타고 내리는 인하대역의 욕망은 자못 크고 깊다. 단순히 승객과 물품을 운송하는 일개 지점이라면 인하대역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윤후명이 청춘의 고독을 협궤열차의 속살로 육화(肉化)했듯이 새 철도 수인선과 인하대역인하로 묶인 들의 리듬과 율동 속에서 내일의 속살을 찌워갈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간 풀죽은 용현캠퍼스의 도약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위해 인하대역주변에 다양한 교육시설과 문화공간을 건축하고 유치하는 계획을 착실히 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아마도 공장과 아파트로 가득 찬 회색의 거리 용현동 일대는 남녀노소, 피부와 혈통, 지역의 차이가 무색한 다중(多衆)다문화의 거리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인하대생들의 참여와 기여, 다시 말해 교정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문화를 함께 나누고 즐기지 못하는 그들의 거리가 된다면? ‘인하대역은 그래서 기회이기도 하지만 위기이기도 한 선물이다. 단지 취업과 성공을 위한 교과와 학습을 넘어 이웃들의 행복과 즐거움에 동참하는 지식과 문화를 깊이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오늘도 인하대역건설의 노동자와 포크레인은 그날을 향해 늦여름의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최현식(국어교육과 교수)  inha@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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