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로 이번 봄학기가 끝난다. 학기말이 되면 매번 드는 고민이 있다. 어떻게 학점을 부여할까 하는 문제이다. 취업난과 수강생의 노력을 생각하면 후하게 주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강의평가와도 무관하지 않다. 내 딴에는 잘(?) 가르쳤다지만, 잘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평가의 잣대는 주관적일 수 있다. 편안하게 수강하고 점수가 후한 것이 잘된 강의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5월 신문지상에 학점인플레가 이슈가 되었다. 대학저널에 따르면 서울대 재학생의 52%가 전공과목 A를, 83%가 B학점을 받았다고 한다. 부정행위를 방임하는 감독관행에 대한 비난도 함께 보도되었다. 조선일보는 작년 2학기부터 학점인플레를 정상화하려고 대학들이 상대평가제를 도입하자 상당수 학생들이 반발에 나선다고 보도하였다. ‘잡코리아’의 통계치를 인용해 학점인플레로 기업들이 채용시 학점 반영률을 낮춘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똑같은 문제가 2008년 금융위기때 주택저당증권(MBS) 평가등급에 대해 제기되었었다. 신용평가사(이하 신평사)는 증권의 질(質)을 A, B, C 등급으로 평가하는데, 이 평가의 잣대에 인플레가 심했었다. 투자자가 구매하려는 증권이 양질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인 신평사가 등급을 판정하도록 되어 있다. 마치 교수가 학생의 역량을 학점으로 평가하면 기업은 학점을 근거로 채용여부를 결정하는 격이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평가대상인 증권의 발행자가 평가자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점이다. 둘째 복수의 신평사가 증권발행자 유치 경쟁에 나설 경우, 평가대상인 발행자는 후한 평가자를 찾아다니는 소위 쇼핑(shopping)이 일어나고, 신평사는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고 등급을 인플레시킨다는 것이다. 2000년 전후 신평사 숫자가 늘어나고, 수임료경쟁이 붙자 S&P, 무디스마저 A등급을 남발하게된다. 그 결과는 글로벌 금융위기, 금융시장 붕괴였다.
 비슷한 문제가 대학에도 있다. 평가자는 교수이지만 등록금은 학생들이 지불하는 구조에서 동일강좌에 여러 분반이 개설되거나 과목선택의 폭이 커질 경우 수강쇼핑과 학점인플레에서 초연해지기 어렵다. 다행히도 우리학교는 타 대학에 비해 상대평가 룰이 엄격하다. 그러나 30% 상한의 A학점 밴드를 모두 A+로 채울 수도 있고, 강의평가를 의식할 경우 학생들의 구미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대학의 모토중 하나가 ‘잘 가르치는 대학’이다. 그 목표는 학생역량 강화일 것이다. 달성 수단에는 당근과 채찍이 있다. 성적 우수자나 향상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장학금 같은 당근과 잦은 과제부여와 평가, 학점차별화란 채찍 말이다. 문제는 둘 다 실행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쉽게 가르치고 후하게 평가하자란 유혹이 찾아들곤 한다. 후한 점수에 평가가 짠 학생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역량 강화와는 배치된다. 그런데 학생들의 시계(time horizon)가 나처럼 길까? 이번 성적확인 기간에 학점을 올려달라는 메일은 몇 통이나 올까? 결국 거절하겠지만, 구구절절한 사정에 No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약해지지 말자란 다짐을 해본다. 이것도 학생역량 강화라는 생각에... 이런 저런 상념가운데 내 나름의 당근과 채찍 조율전(戰)인 이번 학기도 막을 향하고 있다.

한재준 교수  inh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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