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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몇 ℃였는가

 무슨 일이든 ‘처음’과 ‘마지막’이란 단어를 붙이면 특별해진다. 처음은 감격스럽지만 쉽게, 그리고 마음에 담을 여유도 없이 허공에서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마지막은 준비할 수 있다. 필자도 ‘마지막’ 데스크로 매듭지어 보려고 한다.  
 좋아하는 시 중에서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가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보던/그 꽃’이란 짧은 시가, 학보사를 마치며 떠오른다. 시작했을 때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막바지가 돼서야 깨달았다. 특히 학보사를 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사람은 상대에게 온도차를 느끼면 실망한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100℃만큼 상대방을 대하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80℃정도밖에 안 된다면, 자아방어기제를 통해 80℃정도로 보이려고 노력한다. 한 발자국 앞서 가거나, 뒤로 간다면, 거리로 인해 100℃의 열기가 80℃처럼 착각할 수 있으니까. 신문사를 하면서 배운, 씁쓸하지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생활의 기제다.
 신문사는 마치 하나의 버스 정류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가며 함께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고, 기다리지 않은 다른 버스를 타고 홀연히 사라지기도 했다. 새벽녘 버스정류장에 으레 그러듯 성난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상처받은 이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 벤치에 앉아있기도 했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정류장에서, 이제 슬슬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한다는 신호를 알리고 있다. 정류장은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인하대학신문사만큼은 언제나 100℃였다. 꾸밈없는 그 순수한 온도에, 필자는 추억을 삼아 떠나보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미련 없이 어느 장소를 떠날 순간이 찾아올 때 당신은 몇℃로 대했는지 곱씹어보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특징 중 하나가 남아있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각각 다른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바로 ‘안녕히가세요’와 ‘안녕히계세요’다. 이는 사소한 어조의 차이로 이별의 감칠맛을 내준다. 일본의 어느 작가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우리나라의 작별인사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두 인사를 곧잘 헷갈리곤 했다. 구분하기가 어려워 습관처럼 ‘안녕히가세요’만 사용했었는데,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꽤나 우스운 기분이었을 것이다. 분명 떠나는 것은 나인데, 오히려 내가 안녕히 가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꽤 머리가 자랄 때까지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정말 작별인사를 남길 때다. 이제는 ‘안녕히계세요’와 ‘안녕히가세요’를 혼동하지 않는다. 이것은 드디어 제대로 된 인사를 할 기회가 찾아왔다는 의미다. 인하대학신문사를 포함해 모든이에게 작별인사를 고해본다. ‘안녕히계세요’라고. 그리고 덧붙여, 당신의 마음에도, 모든 학우들의 마음에도, 각자의 꽃을 찾을 수 있길 소망한다. 인하대학신문사의 꽃도, 언젠가는 마음속에서 활짝 피기를.

백종연 편집국장  jy_100@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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