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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이발소를 지키다

 하얀 가운을 걸친 이발사의 가위질과 면도거품. 한 때 이발소는 미용실의 두 배가 넘었지만 지금은 그 흔한 삼색등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옛 문화들이 하나둘씩 과거 속으로 사라져가는 가운데 4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하이발소’의 장기용(76)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Q. 이발소를 운영한지 오래됐을 것 같다.
 지난 1975년 8월 16일에 시작해서 오는 8월이면 만 40년이 된다. 처음에는 종업원으로 들어와 일을 배웠다. 좋은 사장님 밑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 10년이 흘렀고, 우연한 계기로 1984년부터 인수를 받아 본격적으로 이발소 일을 시작하게 됐다.

Q. 그간 학교의 역사를 함께 해온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할 수 있다(웃음). 학교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때는 5호관과 6호관, 정석도서관도 없었다. 지금은 건물들이 높아지고 시설도 좋아져 학생들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 같다. 후문가도 전보다 많이 발전했다.

Q. 현재 후문가에 미용실이 많아 운영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40년째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있나.
 예전만 하더라도 후문가에 이발소만 4곳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돈벌이가 안돼서 사라졌다. 현재 후문가에 많은 미용실이 생겼지만 그로 인해 운영이 어려운 건 아니다. 요즘 학생들은 머리를 자르러 더 멀리도 나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이발소가 어려운 것 같다. 학생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수입에 얽매이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해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운영한다.

Q. 이발소를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옛날에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머리를 깎으러 왔다가 ‘아직 용돈 받을 날이 남아서 나중에 가져다 드리겠다’며 가는 일이 많았다. 믿고 보내주면 한 달쯤 있다가 그 학생이 또 온다. 돈을 가지고 와서는 지난번에 자른 값을 치르고 같은 방법으로 나중에 주겠다며 또 머리만 깎고 가는 일이 허다했다. 특별히 악의가 있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어려웠던 시기였고,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로 남았다.

Q.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이발소가 내년 1월까지 계약이 된 상태다. 학교에서 허가를 내준다면 계속해서 하고 싶다. 이렇다 할 신념은 없지만,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고민한다.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발소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평주연 기자  babyeon@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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