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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지나간 시간과 마주하다

 박물관은 지나간 시간과 역사를 저장해 놓은 현대 인류의 인공 건축물이다. 이곳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간대에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이란 곳은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자 매력적인 장소임이 분명하다. 이에 필자는 햇살이 밝은 지난 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의 기획전시관을 찾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찾다
 지난 6일 오후 2시, 서대문역 근처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은 평일 오후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다. 박물관 앞의 분수조차 가동되고 있지 않아 지나가는 차들의 바퀴가 시멘트 바닥을 스치는 소리 외에는 방문객들의 심심한 대화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박물관의 외관은 상당히 세련돼 있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외관은 주변의 고층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한국의 미를 뽐내는 건축물은 아니었지만, 깨끗하고 도시적인 분위기는 주변경치와 잘 어울렸다.
 내부로 들어가자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장을 소개하는 터치스크린이 필자를 반겨 줬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상설전시장보다는 기간을 정해놓고 전시하는 기획전시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에 기획전시장을 찾았다. 마침 기획전시장은 필자가 반가워할 만한 소재인 ‘응답하라 1994’라는 이름을 내걸고 20년 전의 물건들을 전시해놓고 있었다.

●서울, 응답하라 1994
 전시장에서 필자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커다란 종 모양의 타임캡슐이었다. 이 타임캡슐의 정식 명칭은 ‘서울1000년 타임캡슐’로, 지난 1994년 서울시가 수도로 정해진 지 600년이 됐음을 기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캡슐이라고 한다. 1994년 11월 29일에 매설됐으며, 보신각종 모양을 본떠서 높이 1.7m, 직경 1.3m 크기의 특수재질로 만들어졌다. 현재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안에 위치해 있으며 ‘1994년 서울의 인간과 도시’라는 주제 아래 당시 서울의 생활, 풍습, 인물, 문화예술 등을 상징할 수 있는 문물 600건을 선정해 매설했다고 한다. 개봉 일시는 서울이 수도로 정해진 지 1000년이 되는 2394년 11월 29일이라는데, 문득 후손들이 이 안에 든 물건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과연 서울이란 도시가 그때까지 잔존해 있을지도 의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고개를 돌리니 반가운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장 유리벽 너머에 전시돼 있었다.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 삐삐와 같은 통신기기들이 전시장 한 편을 자랑스럽게 차지하고 있었다. 삐삐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15년 전, 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 필자는 초등학생이라 잘 몰랐지만 필자의 누나들은 모두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삐삐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당시 연애를 하고 있던 필자의 작은누나는 486(사랑해)이라는 삐삐 메시지를 보며 유난을 떨었더랬다.

 잠시 추억에 빠져 있는 동안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나 보다. 전시장은 어느새 견학을 나온 여고생들로 붐벼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영향일까, 그들은 비록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을 지라도 추억의 전시물들을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얘들아 이것 좀 봐. 드라마에서 봤던 거야!”라며 천진난만하게 말하고 있는 여고생들의 표정에서는 새로운 문물을 보는 듯한 신기함이 묻어나 있었다. 성암고등학교에서 견학 차 나왔다던 그들은 필자가 전시회를 관람한 소감을 묻자 “불과 십여 년 전 사람들이 정말 이런 물건을 썼다는 게 신기하다”며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이어 “우리도 나이가 들면 지금 우리의 스마트폰도 전시되는 것 아니냐”며 농담반 진담반의 말을 던지기도 했다. 필자와 적어도 7살 이상 차이가 나는 그들의 생각을 들으며 천진난만한 모습이 귀여워 자연스레 미소가 나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필자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추억이 담긴 ‘세 개의 방’
 또 다른 기획전시관에서는 ‘세 개의 방’이라는 주제로 1960년대와 1980년대 사이의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있었다. 홍순태 사진작가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700여 장의 사진들 중 일부를 전시한 기획전이었다. 홍순태 사진작가는 거동이 불편한 82살 고령의 나이에도 촬영을 떠날 정도로 열정이 가득해,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러한 열정 하나만으로 서울을 누비며 힘겹지만 뜨겁게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을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을 앞서 간 사진가 한 사람이 남긴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시대적 진실을 보고 기억하길 원할 뿐이다”라고.

 전시관에는 유독 나이가 꽤나 들어 보이는 어르신 분들이 많이 관람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진들을 보며 마치 추억에 잠긴 듯 사진 한 장, 한 장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들 중에는 추억에 깊게 빠진 나머지 눈시울이 붉어진 분도 계셨다. 실례인 줄은 알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실례지만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분은 예순여덟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진이 찍힌 68년도면 내가 고등학생 때인데, 그 때 생각이 나네”라고 말씀하시는 그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이 담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돌아가고 싶으세요?”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아니, 난 지금이 좋아. 아쉬운 일이 있어도 그것 또한 내 삶의 일부니까. 또 지금이 훨씬 살기 좋잖아”라고 환하게 웃으며 답하셨다.

 할아버지와의 대화 후, 옆으로 발걸음을 몇 발자국 옮기자 ‘기억의 방’이라는 전시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는 60년대 청계천 주변의 사진과 더불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서울 시민들의  삶이 담겨져 있는 사진들이 전시 돼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사진이 전시된 공간 중 서랍처럼 생긴 곳이 있어 실제로 열어보고 서로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곳은 자신들의 추억과 감상을 적는 공간이었는데, 관람객들의 대부분이 어린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낙서들이 많이 보였다. 그럼에도 필자는 서랍에 담겨져 있는 종이를 하나씩 넘겨가면서 사람들의 추억들을 확인했고, 결국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메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21살의 남자가 쓴 글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나의 아버지가 살던 동네가 당시에는 여기 서울의 강남보다 나았었겠구나’라는 내용이었다. 이 시대가 얼마나 팍팍한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의 글에 필자는 한순간 멍해져 그 자리에서 몇 분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필자는 궁금했지만, 박물관의 창밖은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어 발걸음을 출구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을 나서며
 저녁노을이 하늘을 수놓을 무렵 필자는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수다스럽던 여고생들도 어느새 모두 집에 가고 없었다. 분수대에서 솟아오르는 물소리만이 박물관 주변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와 어울려 잔잔히 퍼지고 있었다. 필자는 생각했다. 어쩌면 필자도 전시관에서의 할아버지처럼 30년 뒤 또는 40년 뒤에 박물관을 찾아 지금 시대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고 추억하는 데 사진과 역사적인 물품만큼 효과적인 것이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야 할 인류의 자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기자  journalist_u@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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