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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논단> 달리와 이응노

 “왜 아직도 역사인가?” 역사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뒤늦은 대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혹시 그렇게 된 까닭이 그동안 한국사회가 문학, 철학, 역사학 등 기초학문을 천대했던 실종된 시대정신의 반영은 아닌가. 역사의식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근본요소이다. 그것은 역사인식에 다름 아니다.
 역사의식은 역사인식과 함께 운동하는 망각없는 사료수집과 그 해석과 함께 발전한다. 그리고 중대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평가의 시간을 갖는다. 예컨대 탄생 1백주년. 이런 계기를 통해, 멀리 있어 보이던 기초학문이 현실의 핵심에 자리 잡는다.
 올해 살바도르 달리 전시회가 열리었다. 이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이 났다. 우선, 올해는 달리 1백주년이기도 하지만, 거장 고암 이응노 1백주년이기도 한데, 한국사회는 고암에 대해서는 매우 관심이 저조한 반면에, 달리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이 불균형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업적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습성이 강하지 않는가 싶다.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우리들은 미술작품을 어떻게 감상하고 있는가이다.
 미술사는 곰브리치가 주장하였듯이 아는 만큼 보인다. 작금의 달리 예찬이 혹시 무지의 반영은 아닌가. 잘못 알면 잘못 보인다. 그리고 그렇다면, 달리의 예술세계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아마도 그의 고백이 가장 정확한 답이 아닐까 싶다.“내게 있어서 최고의 놀이는 나 자신이 벌레에 갉아먹혀 죽는다고 상상하는 일이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악독하고 거대하며 꿈틀거리는 초록색 지렁이떼에 의해 나 자신이 서서히 먹히고 소화되는 광경을, 그리고 내 살을 먹고 놈들이 살찌는 광경을 믿을 수 없는 만큼 그 세부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상상한다.”
 달리의 예술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예찬하는 세계관이다.
 역사의식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맥락에서 성숙해간다. “죽음이여 영원히!”(Viva la Muerte)를 애호하는 파시즘이 농익어가던 시절 스페인의 사상가 우나무노가 바로 이 세계관에 대항하여, 사랑과 평화를 주장하였던 맥락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 우나무노를 기억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 프롬이 시체애(necrophilia)에 대항하여 생명애(biophilia)를 주장했던 맥락을 기억해야 한다.
 그에 의하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모든 사람이 생명(삶)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보다 퇴락에 의해 - 즉 기계적인 것에 의해, 그리고 죽어있는 모든 것에 의해 - 더욱 매료되는 사람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오히려 시체애호가들이 프롬이 진단했던 그 때보다 더 많아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암이 보여주는 예술세계이다. 그의 군상 시리즈는 정치적 민주화에 참여하여 투쟁하는 민중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그 이상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시원적 세계에서 생명을 위하여 사냥하는 역동성과 공동체적 놀이가 군무(群舞)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 비판적 역사의식은 무엇보다 망각을 비판하고 바른 역사적 평가를 통해서 기억하는 맥락에서 성숙한다. 지금도 이응노미술관은 역사를 기다리고 있다.

서규환 (정치외교)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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