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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의 매력을 알다

 즐거운 날은 기뻐서 한 잔, 슬픈 날에는 우울해서 한 잔씩 찾게 되는 마성의 음료 ‘술’. 술이 인간의 역사에서 언제 등장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점은 지금도 예나 지금이나, 시대·장소를 막론하고 술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의 축복이라 칭송받는 술, 그 매력을 찾고자 지난 25일 서울 코엑스 ‘서울 국제 와인&주류 박람회’를 방문했다. 

 
▶ 술을 기다리는 사람들
 서울 국제 와인&주류 박람회는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국내 유일의 주류전문 전시회다.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진행됐는데, 마지막 날만 일반인들의 방문이 허용됐다. 약 20개 국의 250개 사가 참가한 이번 박람회에서는 와인품평회와 시음행사 등이 진행됐다. 국내에서 ‘술에 관심있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큰 행사인 만큼 입구부터 북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뜨거운 관심을 증명했다. 
 필자는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필자 뒤로 줄을 서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을 때 한편에서 그들을 노리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바로 ‘암표상’이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암표상이 이 박람회에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터라 신기했다. 그 때 한 암표상이 필자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그는 “아가씨, (박람회) 온거지? 만 오천 원”이라며 주변 눈치를 보며 금액을 홍보했다. 솔직히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혹시나 모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카드밖에 없다며 거절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필자의 친구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입장했다고 한다. 또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예매하면 30% 저렴한 가격에 입장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떠난 기차를 잡을 수 없는 노릇인지라 끊은 티켓을 바라보며 ‘열심히 마시리라’ 다짐했다. 간단한 설문지 작성 후 방문객 확인증을 받고 드디어 박람회 안으로 입장했다. 입구부터 아찔한 알코올 향이 필자를 휘감았다. 어떤 술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됐다. 
 박람회 내부에는 술이 알딸딸하게 올라 양 뺨이 붉게 물든 사람부터 숙취해소 음료를 마시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는데 바로 ‘와인 잔’이었다. 와인 잔만 있으면 모든 술을 무료로 즐길 수 있었다. 모두가 쉴 새 없이 잔을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했다. 필자도 그 무리 속으로 합류했다.
 
▶ 이색 와인을 발견하다
 국제 와인&주류 박람회인 만큼 내부에는 전세계 다양한 술이 존재했다. 각 나라 별 부스가 있어 무료로 시음할 수 있었다. 필자가 제일 먼저 맛 본 와인은 스페인 와인이었는데 전반적으로 신 맛이 강하고, 포도 그 자체를 먹는 기분이었다. 홍보하시는 분이 외국인이라 자세한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주변 관광객들의 말에 따르면 가성비 좋은 와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더 먹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조지아 와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와인을 즐겨 마신다는 김혜원(대학생·22)씨는 “시지 않고 살짝 쓴 맛이 느껴지는 게 좋다”며 다 마시고 난 뒤에도 몇 번이나 입맛을 다셨다. 이외에도 여러 나라의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스, 이집트, 페루 등 세계 곳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수많은 와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탄산이 함유돼 톡톡 튀는 맛인 만큼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자매끼리 박람회를 찾았다는 김은영(대학생·21)씨는 “다른 와인에 비해 훨씬 새콤한 맛이 살아있는 것 같다. 정말 맛있다”며 감탄했다. 
  필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와인은 ‘보니또 와인’이었다. 이 와인은 팩에 담겨진 4.5도의 낮은 도수의 와인으로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연두색 포도가 그려진 것은 화이트, 보라색 포도는 레드였는데 필자는 좀 더 풍부한 맛이 느껴지는 레드 와인이 마음에 들었다.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며 음료수처럼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자의 친구도 마음에 드는지 어머니 선물용으로 고민했다, 술다운 술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으로서 보자면, 음료수에 가까운 느낌이라 돈 주고 사기엔 아까웠다. 
 한편 우리나라 주류회사에서는 전통 음료와 와인을 접목시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오미자 와인’이 있었는데 다섯 가지 맛이 느껴진다는 오미자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진 그야말로 오묘한 맛의 와인이었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 맛 모두를 느껴보고 싶다면 꼭 한 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 ‘맛’있는 맥주를 맛보다
 우리나라 맥주는 전세계적으로 맛이 없기로 유명하다. 이는 맥아 함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인데 국가 규제가 엄격한 탓이다. 이 때문인지 이날 시음회에서 가장 길게 늘어선 줄은 단연 맥주였다. 각 맥주 부스 별로 홍보 책자가 전시돼 있어 설명을 보며 시음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독일 맥주가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독일 밀맥주의 대명사인 ‘슈나이더 바이세’를 시음하기 위한 줄은 한 번 서면 기본으로 10분은 대기해야 했다. 전시 중인 종류는 오리지날, 아벤티누스, 호펜바이세로 세 가지 종류였다. 필자가 시음한 오리지날은 탄산이 풍부하고 견과류 향이 나는 맥주였다. 
 또 다른 독일 유명 맥주인 ‘파울라너’도 그 못지 않은 인기를 과시했다. 파울라너 맥주는 부담스럽지 않게 담백한 맛이 매력적이라 질리지 않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외에도 달콤한 과일향이 인상 깊은 벨기에 ‘브뤼흐스 조트’ 맥주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각자의 잔에 다양한 맥주를 채워가며 즐겼다. 한 쪽에 마시며 즐길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는데 마치 ‘펍(Pub)'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분명 취하지 않았는데 취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 한 잔 두 잔 마시던 필자도 어느새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한편 최근 떠오르는 이색적인 맥주도 살펴볼 수 있었다. 독일 퀼른의 대표 맥주 ‘가펠퀼쉬’에서는 천연에이드를 혼합한 무알콜 맥주를 선보였다. 임산부, 모유 수유 중인 사람, 운동중인 사람,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독일 청소년 급식에 후식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관계자 말에 따르면 종교적으로 금주를 실시하는 이슬람 국가에도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청량감이 있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 
 
▶ 아시아의 전통주, 세계화 옷을 입다 
 아시아 전통주도 전시 중이었다. 일본의 ‘사케’는 젊은 층을 공략해 ‘스파클링 사케’로 재탄생했다. ‘멜론 스파클링 사케’, ‘포도 스파클링 사케’ 등 과일 탄산 사케였다. 한 손에 잡힐 듯한 가느다란 병 안에 연두색, 다홍색, 보라색 빛의 알록달록한 사케가 들어 있어 먹기 아까울 정도였다. 과연 술에 있어서도 디자인 강대국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맛에 조금은 실망했다. 멜론주는 사탕을 먹는 맛이었다. 
 대만의 고량주도 맛볼 수 있었다. 고량주는 수수로 빚은 증류주로 필자는 가장 인기 있다는 58도 제품을 선택했다. 알싸한 맛과 함께 타는듯한 목넘김이 황홀했다. 가슴 깊이 울려 퍼지는 매운 맛이 감탄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전통주도 시음할 수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해 특산품 머루주도 전시 중이었다. 머루의 시큼하고 씁쓸한 향을 담은 술로 당도가 높은 복분자주, 오디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드라이한 술을 좋아한다면 머루주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역 유명 인사인 신사임당, 율곡 이이 등을 활용해 병을 디자인 한 미니어처 제품도 판매 중이었는데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도수도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한 점도 좋았다.  ‘제대로 홍보한다면 젊은 층을 잘 공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사과 막걸리, 유자 막걸리 등 과일과 접목한 막걸리도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유자 막걸리는 유자의 새콤달콤한 맛과 막걸리 특유의 부드러운 느낌이 결합해 마치 ‘유자 우유’처럼 느껴졌다. 술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 축복이 저주로 변할 때 
 고대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는 친숙한 술의 신이다. 그가 인간에게 선물한 술은 축복이자 저주라고 불리곤 한다. 적당한 양의 술은 근심을 덜어주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좋은 선물이지만 과할 경우, 술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 국제 와인&주류 박람회에서도 종종 적정선을 지키지 못하고 취기에 추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닥에 아예 자리 잡고 앉아 술판을 벌이는 것뿐만 아니라 과한 스킨십, 고성방가, 쓰레기 무단 투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한때 광기의 상징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인 술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소문난 애주가였다. 그는 ‘좋은 술이 없는 곳에 좋은 삶이란 없다’고 말했다. 술의 매력을 알고, 폭음이 아닌 적정선을 지키며 마시는 것이야 말로 진정 축복받은 삶이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술, 치명적인 매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술 한 잔의 매력, 그 매력을 잘 아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매력적인 사람이다.
 

강지혜 기자  jj030715@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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