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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에서의 어느 평범한 하루

▶ 왕들의 스포츠, 경마
 정해진 일정한 거리를 기수가 말을 타고 경기장을 달리며 승패를 겨루는 경마. 경마는 흔히 ‘왕들의 스포츠’라 불리는데, 이는 중세 영국의 왕후와 귀족들 사이에서 소유마필의 능력과 자신의 기승술을 과시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일부 계급을 위한 취미로써 시작된 경마는 규모의 확대에 따라 점차 대중화됐고, 현재는 일반시민을 위한 건전한 오락으로서 정착되기에 이른다.
 한국의 경우 지난 1922년, 최초의 경마시행체인 ‘조선경마구락부’가 설립되며 베팅이 포함된 근대적인 의미의 경마가 시작됐다. 이후 조선경마구락부는 ‘한국마사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지난 1954 년 뚝섬경마장을 설립해 경마 부흥의 발판을 마련했고, 1989년 과천으로 이전해 지금의 ‘서울경마공원’ 개장에 이른다.

▶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
 “마토 마감까지 10분 남았습니다.” 경마장 내부 아나운서의 방송 멘트가 나오자,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번과 5번 말에 걸자.” “아니야, 난 7번이 좋아. 아까 예시장에서 봤는데 말의 눈빛이 살아있더라니까. 7번 말에 만 원이다!”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은 속삭이듯  말을 주고받았다. “이번 4번 말은 기수가 좋아. 저번에도 성적이 괜찮고 1등도 많이 했다는데? 배당률 좀 봐. 배당률이 그걸 증명해 주잖아? 4번이야 4번.” 주부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꽤나 전문적인 분석까지도 들렸다.
 그러나 경마장 내부의 대부분은 비슷하다 못해 획일적이기까지 한, 편안하고 펑퍼짐한 옷차림의 중년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경마종합지를 자연스럽게 손에 쥔 모습과 무표정으로 일관된 진지한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비슷해 누가 누군지 분간이 힘들 정도였다.
 그와는 상반되게 데이트를 즐기러 온 남녀 커플들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경마종합지를 손에 쥐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얼굴에는 연신 미소가 가득했고 대화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족끼리 오는 경우는 대개 아이들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연신 두리번거리기를 반복하곤 했다. “나는 분홍색” 또는 “나는 하얀색” 하면서 말의 순위보다는 말 번호의 색상에 더 관심을 갖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 경마의 시작, 마권 구매하기
 경마장을 메우는 그들의 말소리를 따라 가다보니, 출퇴근시간 지하철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줄이 기다랗게 늘어선 구매창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제각각 자신이 정한 경주마의 번호와 베팅금액을 입력한 마권을 돈을 주고 데스크에서 영수증과 교환한다. 영수증을 받아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 차 있었다.
 나도 경마장 사람들의 기류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에 각 기둥마다 차례로 정렬돼있는 마권을 한 장 뽑았다. 그러나 처음 마권을 손에 쥔 순간, 내 머릿속은 때 묻지 않은 백짓장처럼 새하얘졌다. ‘단승식’은 무엇이고 ‘연승식’은 무엇이며 옆에 적힌 숫자들은 당최 무엇이란 말인가. 로또처럼 단순한 숫자 같기는 한데,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손에 든 무고한 검정색 컴퓨터용 사인펜만을 연신 입으로 물어뜯으며 끙끙 앓던 나는 결국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초보교실로 들어가 강연을 들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명쾌하고 쉬운 설명 덕분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마권에 검은색 점선을 그렸다.
 경마에서 △단승식이란 1등 말만을 맞추는 방식으로, 확률은 적지만 배당률이 높아 큰 금액을 딸 수 있는 방식이고 △연승식이란 8마리 이상의 말이 출주할 경우, 첫 번째에서 세 번째 사이에 들어오는 말을 맞추는 방식을 말한다. △복승식은 순서에 관계없이 1등과 2등 2마리의 말을 적중시키는 방식이며 △복연승식은 1~3등 말 중 순서에 관계없이 2마리의 말을 적중시키는 방식이다.
 나는 ‘인생 한방’이라는 생각에 단승식에 천 원씩 베팅해 네 장을 구매했다. 교환대에서 영수증을 받음과 동시에 경마장 안에서는 어느덧 경기 시작 전의 마지막 안내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 달려라, 쾌도난마!
 “마토 마감까지 1분 남았습니다.” 장 내 아나운서가 마지막 안내 멘트를 마치자, 사람들은 일제히 경기가 이뤄지는 야외 관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장은 일층 야외 로비의 계단부터 시작해서 2층과 3층의 발코니 까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5, 4,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전광판으로 쏠렸다. “그래 5번! 5번 잘한다! 쾌도난마!” 각자 자신이 베팅한 말들을 언성 높여 응원하기 시작했다. 함성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말들과 결승 지점까지의 거리가 약 100미터 정도에 이르자, 경기장 외부의 공기층까지 뒤덮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베팅한 말의 번호를 경기장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경주마들은 이에 보답이나 하듯 각자 마지막 자신만의 승부수를 띄웠다.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고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지기도 경우도 허다했다.
 “달려! 달려! 그래 잘한다!” 사람들의 외침과 환호소리가 경기장을 뒤덮을 때쯤, 경주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했다. 목표를 바라보고 오로지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해 질주했다.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이번에는 경기장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철장안의 사나운 맹수처럼 말이다. 맹렬히 질주하는 말들의 매서운 눈빛에서는 오로지 그러한 목표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첫 번째 말이 들어오고 나서야 경기장의 환호성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각 말들의 순위가 일제히 정해지고 전광판에 확정된 순위가 기록되는 순간, 사람들의 환호성은 절규가 되고 욕설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에이x 저거 더럽게 못 달리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경기를 위해 마권 구매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함성을 지르며 한껏 들뜬 표정으로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기는 2분도 채 넘기지 않고 끝이 났다. 경주마가 총력을 기울여 달리는 2분 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모두 쏟아냈다. 2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 그들의 얼굴에서는 온갖 다양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사라졌다가 반복됐다. 마권 영수증이 2분 만에 휴지조각으로 변한 나의 얼굴에도 아마 일련의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밀물 썰물이 반복되듯이 경기장도 사람들로 붐빔과 한산함을 반복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환호성과 절규로 경기장의 온도가 대펴지고 식기가 열 댓 번 반복되자, 어느새 경마장에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 경마장을 벗어나며
 시침이 숫자 6을 가리키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베팅할 때의 설렘과 기대, 경기를 관람할 때의 환호와 탄식은 이미 과거형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미련 없이 발을 떼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기계들의 행진처럼 보였다.
 “경마장 운영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 방송에 뒤늦게 사람들을 쫓아 나가다 안타까운 광경과 마주했다. 경기장 매표소 내부에는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 많은 수의 도우미들과 청소부들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경기가 끝나고 나면 경마장 내부는 항상 많은 양의 종이더미와 쓰레기들로 넘쳐났다. 치우고 치워도 쓰레기들은 줄지 않았다. 경마장이 쓰레기를 버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은 아닐까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간혹 경마장 안에는 앳된 어린이들과 외국인들도 종종 눈에 띄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이 이러한 광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속으로 생각해보며 부끄러움에 아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의 국민성이란 말인가. 참으로 아쉬웠다.
 또한 바닥에 나뒹구는 경마종합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자기가 베팅한 말의 승리와 그로 인한 자신의 금전적 이득을 바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확률적으로 기대가 보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보다는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는 순간이 더 많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돈을 잃고 또 그것을 메우기 위해 경기장을 떠나지 못한다. 스포츠와 레저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에 기반을 둔 삶의 목적은 또한 무엇인가. 경마장을 벗어나며, 함께 경마장을 벗어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스포츠와 레저는 삶을 윤택하기 위한 요소일 뿐, 목적이 돼 버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성욱 기자  journalist_u@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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