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감에 대하여 - 인하프레스

몇 년 전일이다. A교수는 ‘사제동행’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일찍이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통학차에 올라섰다. 그런데 그날따라 사람이 많아 예닐곱명의 사람들이 서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톨게이트를 통과할 무렵 문제가 발생하였다. 고속도로 입석운행은 규정위반이라고 평소 안하던 단속이 있었던 것이다. 실갱이 끝에 운전사 멘트가 흘러 나왔는데, 요지는 후진할 테니 서있는 분들은 일단 내린 다음 톨게이트를 지나 다시 타라는 것이다.
서너 명의 교수를 포함한 입석 승객 예닐곱 명은 황사가 몰아치는 고속도로변 200여 미터를 처량히 걸어 편법에 동행하였다. 몇 칠분 일당을 날려야할 운전사의 ‘쇼부’가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더구나 눈을 감고 있는 학생들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한 시간 남짓 타야 하는 통학차에서 선뜻 자리를 양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수 입장에서도 차라리 마음은 편했을지 모른다. 각자 내 돈 내고 탄 버스에 그것도 늦게 탄 주제에 눈이 마주쳐 선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리를 권유받아 못이긴 척하고 앉아서 한 시간여를 가기란 참으로 민망하고 못할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사제이간’의 현장을 경험한 A교수는 그 후 일체 통학버스에 타지 않는다.
통계란 참으로 마술이다. 객관적인 팩트를 담고 있으면서도 분석자의 의사에 따라 널뛰기를 하기 때문이다. 통근차를 타는 교수의 숫자가 전체 교수의 10여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팩트일 것이다. 통근차를 없애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일부 교수만이 누리는 ‘선별적 복지’의 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근차의 유무형의 가치까지를 총체적으로 아는 입장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통근차를 이용하는 교수가 몇 퍼센트인지, 더 많은 교수가 탈 수 있는데 왜 못타는 것인지를 조사할 것이고 상황은 180도 달라 질 것이다. 또 통근차를 타는 사람들의 연구 생산성이라든지 강의평가와 같은 다른 기여도를 조사하는 통계를 내어 본다면 ‘선별적 복지’ 운운이 얼마나 얼치기 탁상행정인지를 알 것이다. 교수만의 일도 아니다. 매일 칼같이 출퇴근을 해야 하는 병원의 교수 및 직원, 최일선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조교를 포함한 교직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학생의 입장에서도 아침 8시반부터 밤 9시반까지 우리 교수님이 학교에 계신다고 생각하여 보라. 참으로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B교수는 부임 초기에 평소에 통근차에서 눈인사만 하였던 어떤 교수님으로부터 회식연락을 받았다. 가보니 ‘0인회’모임이라고 하였다. 이 기묘한 이름의 모임의 유래를 알고 보니 그 지역에서 인하대학의 통근차를 타고 다니는 교수, 교직원들의 모임이라고 하였다. 매일 마주치는 교수들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차에서 마주치는 교수님들, 게다가 정년하신 OB교수님들까지 나오는 이 모임이 처음엔 참으로 해괴하였으나 면면을 보니 다들 쟁쟁한 분들이었고 다들 인하에서 시작하여 인하에서 정년을 맞이하신 분들임을 보고 자신이 취직한 대학이 잠시 머물다 갈 ‘언저리’대학이 아님을 알았다고 한다.
C교수는 다른 대학에 근무하다 전근하였다. 뒤늦게 옮긴 직장이라 적응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금새 많은 교수님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통근차를 타고 와서 다른 과 교수들과 ‘조찬모임’을 하고, 학과교수들과 ‘오찬회의’를 하며, 그리고 제공되는 ‘저녁소찬’까지 하루 세끼식사를 교직원 식당에서 주로 하다보니, 인사가 오고가고, 결국 인하대학의 ‘밥상공동체’덕분에 금방 내 직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유대감이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 인위적으로 형성되기도 쉽지 않다. 개교 61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이 취임하신 총장 그리고 신임보직교수들, 그리고 이들 신임 집행부를 일괄 흔쾌히 임명한 재단에서는 공동체성의 기본인 ‘사기앙양’을 통한 새로운 도약을 야심차게 준비한다고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목요일 저녁부터 썰렁해지기 시작한 교직원 식당에서는, ‘언저리’대학 현상이 우리 대학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우려하고 이러한 유대감 상실과 사기저하의 근저에 탁상행정은 없는 것인지 탁상정책은 왜 전개되는지 깊이 성찰 하여야 한다는 소리가 이구동성이 되고 있음에도 꼭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사설 inh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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