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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머무는 공간, ‘서대문형무소’에 가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은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5,000여명에 달하는 애국지사의 수형기록을 비롯한 수감실·고문실 등을 통해 그 시절 일제의 만행을 그대로 재현한 그곳. 어둑한 하늘에 유난스러운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던 지난 3일, 기자는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가만히 있어도 운동화 끝이 빗물로 축축해지는 궂은 날씨임에도 역사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입구에서 만난 매표소 직원은 하루 평균 3,000~4,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 수에 놀라며 입구에 들어섰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용산 전쟁기념관은 모두 무료이지만 이곳은 3,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이는 모두 서대문구 수입으로 충당되며, 인건비를 제외한 운영비는 3억 원에 불과해 자료 수집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현재 7개의 옥사와 사형장, 지하 감옥 등을 보존 중이며 관람 동선이 표시돼있어 순서대로 관람하면 된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과거에 보안과 청사로 사용됐던 건물이 보인다. 이어 2층 전시실은 형무소 역사실과 민족저항실Ⅰ·Ⅱ·Ⅲ로 나뉘어져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취조실, 고문실, 그리고 시체를 넣는 관을 벽으로 세워 감금했던 벽관(壁棺) 등이 그대로 전시돼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양한 형태의 관람객이 보였다. 홀로 이곳을 찾은 사람을 비롯해 자녀를 동반해 일제 침략 시대의 역사를 가르치는 가족 단위, 그리고 외국인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부자지간으로 보이던 외국인의 경우 전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유심히 눈여겨보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현저동 101번지
 지난 1945년 광복을 맞아 서대문형무소는 서울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어 대한민국정부의 교도기능을 했다. 지난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 들어와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이는 1987년 11월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게 된다. 이후 서대문형무소는 도시개발의 일환으로 철거될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서대문구와 독립 운동가 후손 및 역사학자, 시민운동가들이 이곳을 ‘역사 교훈의 현장’으로 보존하고자 노력한 결과 서대문구의 주도로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을 시행해 지난 1968년, 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위치한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는 조선 후기에 북쪽으로 가는 큰길인 의주로가 있는 곳으로 사대문과 안과 밖을 동서남북으로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고 한다. 일제는 여기에 대규모의 근대 감옥을 설치함으로써 이곳을 오가던 한국인에게 절대 권력에 대한 복종을 강요했고, 감시와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일제 형무소 시설의 일부가 남아 일제의 침략에 항거한 의병장들과 독립투사들이 고문을 당했던 장소를 포함해 여러 고문 도구들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끝없는 고문을 견뎌내다
 지하실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독립 운동가를 취조했던 공간이다. 각 방은 취조실과 임시 구금실, 독방 등으로 구성돼 이곳으로 끌려온 독립 운동가는 취조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온갖 고문을 감당해야만 했다. 고문이 자행됐던 곳에 다다르니 저절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뭐라 말로 표현이 어려운 감정이었다. 고문 방법도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강제로 수조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코나 입에 물을 마구 들이부어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물고문’을 비롯해,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는 ‘손톱 찌르기 고문’은 글로 된 설명만을 읽는데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수많은 고문 방법 중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것은 상자 고문이었다. 정사각형의 나무로 된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넣은 채 마구 흔들어 못에 찔리게 해 고통을 줬던 고문방법이다.
 이렇듯 서대문형무소 지하고문실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 한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고문의 흔적은 기록으로도 찾을 수 있었다. 권영준의 『형정반세기』에는 ‘…(전략) 얼마 뒤 잡혀 들어온 공산단원 송봉우는 이른바 비행기태우기를 당했다. 비행기를 태운다는 말은 두 손을 뒤로 수갑을 채워 묶고 여기에 밧줄을 천장에 매어다는 것으로 보통 한두 시간씩 계속하곤 했다. 이밖에도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된 것으로 벗겨놓고 가죽채찍으로 매질하는 것, 의자에 묶어놓고 고개를 뒤로 젖힌 뒤 코에 고춧물을 붓는다든가,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 구둣발로 짓밟는 등의 방법이 있었다. (후략)…’와 같이 그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처럼 고문의 기록이 생생하게 쓰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왜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미루나무, 그리고 사형장
 역사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북쪽 끝에 있는 사형장이다. 높이 5m의 붉은 벽돌 아래로 격리된 이곳은 조그만 나무의자에 사형수를 앉힌 채 사형집행자가 손잡이를 당기면 의자와 함께 바닥 밑으로 떨어지며 교수형이 집행된다. 이윽고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면 지하의 시신을 수습하는 곳에 눕혀뒀다가 날이 어두워질 때 옮겼다고 한다. 실제로 지하에 내려가 보니 콘크리트 벽에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다. 사형장 안팎에는 사형장을 지을 때 같이 심은 미루나무가 있는데, 사형장 안의 미루나무는 92년이 지난 나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냘픈 모습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미루나무 안에 한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사형장으로 끌려간 애국지사들이 이 나무를 붙잡고 통곡을 해 ‘통곡의 미루나무’로 불렸다고 하니 마치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고스란히 담긴 역사의 현장
 서대문형무소는 지난 1908년 10월 21일 대한제국 말기, 국권을 회복하고자 맞서 싸운 한국인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됐다.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식 감옥으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순국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돼 고난을 치렀던 곳이다. 이곳 서대문형무소는 지난 1908년부터 1987년까지 80년여 년의 기간 동안 식민권력과 독재정권에 항거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개소 초기 경성감옥의 수감인원은 500여명으로 주로 일제의 침략에 무력으로 맞섰던 의병들이 수감됐다. 지난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병합이 이뤄진 뒤 이완용을 처단한 이재명, 일제 총독을 처단한 강우규를 비롯해 김구, 김동삼, 안창호, 유관순, 한용운 등 낯익은 이름의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이곳에 수용됐다. 지난 1919년에는 3·1독립운동으로 수감자가 급격히 늘어 3,000명에 육박하는 독립 운동가가 수감됐다. 이후 지난 1945년 광복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외 비밀결사, 각종 의열투쟁, 해외 무장투쟁, 사회·노동·농민·학생운동 등의 활동을 펼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수감돼 순국했다.

35년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투사들은 전 민족의 역량을 모아 일제에 맞섰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서대문형무소는 그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이들의 민족정신이 담겨있는 곳이다. 여기에는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에 투쟁한 인사들의 많은 희생도 함께했다. 이렇게 서대문형무소는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80년 여정을 달려, 모두에게 이를 알리고자 앞장서고 있다.
 역사관을 관람할수록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밖으로 나와 다음 전시관으로 이동하는 중에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그간 이곳을 단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는 것, 살면서 참 많은 것을 잊고 지내왔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애국지사들의 희생을 등한시하며 살아오진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일이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의 계절을 맞아 역사의식을 바로 볼 수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평주연 기자  babyeon@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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