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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배우는 자의 권리
  • 윤진현 연극평론가
  • 승인 2015.03.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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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0년 전 일이다. 갓 입학한 대학은 실망스러웠다. 들어야 하는 강의는 배우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것과는 무관한 필수과목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기대했던 자유로운 학문의 전당이라는 낭만적 상상에는 가깝지도 않았다. 물론 성급한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었다.
다행히 어느 날, 우리는 ‘대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무엇이 좋다, 무엇이 다르다, 무엇이 실망이다 같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미 퇴임하신 지 오랜 한 교수님께서 당신이 생각하는 대학을 나무에 비유하여 설명하셨다.
“대학이란 큰 나무와 같다. 학교당국, 재단과 같은 기구는 나무를 키우는 뿌리와 같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도와주는 조교 등은 줄기와 같다. 학생들은 이파리다. 4년이 지나면 떠나간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동문으로서 학교의 성장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자원이 된다.”
‘줄기’까지는 동의하였다. 그런데 내가 ‘이파리’라고? 동의할 수 없었다. 나에게 ‘잎’은 나무의 생장을 위해 광합성을 하고 양분을 모으는 한시적인 도구였다. 겨울이 와서 생장이 늦춰지면 효용이 적어진 잎은 떨어진다. 그런데 학생이 단지 학교를 위해 양분을 모아들이는 소모품 ‘이파리’란 말인가. 아니다. 학생이 없으면 학교는 없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요컨대 학교가 나무라면 학생은 열매다. 학교는 학생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사과나무는 사과가 열리므로 사과나무인 것이다. 사과가 열리지 않으면 그것이 사과나무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잎을 열매로 바꾸어 학교의 중심이 되자 자존심이 조금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이파리 같은 소모품이 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좀더 현실적이기 위해서는 ‘어떤 열매’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 이어져야 했다. 세상에는 이파리보다 못한 낙과도 얼마든지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매라면 겉보기도 예쁘고 속도 꽉 차고 맛도 좋은 열매가 최고다. 그런데 만약 모두 달성할 수 없다면 무엇이 우선일까? 그때 나에게는 맛 좋은 것이 첫째였고 내실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둘째였다. 나이를 먹고 보니 겉보기랄지 스펙도 당시의 내 생각보다는 중요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역시 순위로 정할 것이 아니라 동시 목표여야 했다.
생각해 보면 한 나무의 열매도 크고 작고 맛나고 맛없고 제각각이다. 열매가 그저 나무에 매달려 전달되는 양분만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나무가 열매에게 차별하여 양분을 전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더 튼실한 열매, 멋진 열매로 자라기 위해 열매 스스로 무엇을 하는가를 물어야겠다. 튼실한 열매들은 적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질문하고 답을 찾아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 바로 ‘질문’이야말로 배우는 자의 첫번째 권리이다. 지금 배우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학생’이니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마음껏 질문해도 좋다니 얼마나멋진 일인가. 이번 학기 당장 수강과목마다 담당교수님께 질문하는 메일이라도 하나씩 보내겠다는 목표를 세워보자. 학업과 관련된 자발적인 질문을 가져오는 학생처럼 예쁘고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학생은 없다. 물론 질문이 쉬운 것은 아니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아야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대화와 토론과 논쟁을 마음껏 즐겨보기 바란다. 대학이 주는 최고의 양분이다.

윤진현 연극평론가  inh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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