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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를 닮은 쪽 염색을 하다

예부터 작가나 시인들은 쪽빛을 푸르다 못해 검푸른 쪽빛 하늘쪽빛 바다로 형상화하며 예찬했다. 소설 소나기에서도 소나기가 내린 직후 맑게 갠 하늘을 한껏 갠 쪽빛 하늘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실제로 필자가 체험해본 쪽빛은 가히 찬양할 만한 깊고 푸른색이었다. 이는 누구나 쪽빛을 감상해봤다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하늘과 바다를 닮았다. 자연의 색, 쪽빛을 찾아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하늘물빛 전통 천연염색 연구소를 방문했다.

 

쪽빛, 넌 어디에서 왔니?

천연염색 연구소 입구에서부터 염색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공적인 염색약과는 달랐지만 기분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본격적인 쪽 염색 체험 전, 쪽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천연염색은 주변에 있는 자연 재료를 이용해 색을 입히는 것으로 오방정색인 파랑·빨강·노랑·하양·검정 이 다섯 가지 색을 우리나라 전통염색 기본 색상으로 본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색은 대부분 노란색인데 반해 오직 쪽만이 푸른색을 낸다. 이러한 이유로 쪽은 다른 염재에 비해 귀한 편이다. 쪽은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염색 과정도 어려워 사람들이 접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쪽과 홍화 염색을 마스터하면 천연염색을 다 안다고 할 정도다. 시작하기도 전에 부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편 쪽은 여러모로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다. 천연염색은 기본적으로 항균, 방충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쪽은 다른 염색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고 한다. 쪽 염색 체험을 도와준 홍성하 하늘물빛 전통 천연염색 연구소 실장(이하 홍 실장)옛날 어른들이 시집갈 때 이불 등을 해 가는데 겉면을 쪽으로 했을 정도였다. 특히 좀약이 없던 시절 쪽 염단을 이불 사이에 넣어놓으면 절대 벌레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들어 아토피와 같이 피부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쪽이 피부에 좋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푸른색 속의 과학

우선 쪽 염색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쪽 염액을 만들어야 한다. 쪽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김새의 풀로 2월 말~3월 초쯤 씨를 뿌리고 키우기 시작하는데, 1년생 풀이라 해가 지나 죽게 되면, 씨를 받아 다시 재배하는 반복 과정을 거친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라마다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는 쪽이 죽지 않아 필요한 만큼 잘라서 쓴다는 점이다. 그렇게 키운 쪽은 8월과 9월 사이인 중복과 말복쯤이 되면 성인 남자 키만큼의 길이가 된다. 그 때쯤이면 꽃이 피기 시작해 쪽에 있는 색소가 꽃으로 다 올라가버리기 때문에 꽃이 피기 바로 전 수확을 한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 속 지혜가 느껴졌다.

이후 수확한 쪽은 성인 여자 몸만한 항아리에 꾹꾹 밟아 집어넣고 물을 채운 뒤, 떠오르지 말라고 큰 돌을 올려놓는다. 이틀 정도 더운 날씨에 담가놓으면 김치가 여름날 순식간에 쉬어버리는 것처럼 시큼한 냄새가 나며 삭게 된다고 한다. 이때 파란색 거품, 즉 색소가 우러나온다. 그 후 꼬막과 조개 등을 태워 석회 가루를 만들어야 한다. 이 가루를 만드는 재료도 지역마다 다른데 필자의 추측에는 지역에 따라 생산되는 패류가 다르다보니 제조 방식 또한 차이가 나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석회 가루가 필요한 이유는 석회를 물속에 넣으면 그 속에 있는 색소를 빨아들이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과학시간, 투명 플라스크 안에 분필을 세워놓고 물감을 떨어뜨리면 물감에 있는 수분은 그대로 남아있고, 분필에 색소가 타고 올라가는 실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 성질을 이용해 당그래라고 하는 긴 대로 석회와 물이 잘 섞이도록 저어줘야 한다. 이 작업을 보통 1시간 정도 진행한다고 하는데 상상만 해도 팔이 부러질 것 같았다. 가장 어려운 천연염색 중 하나라는 말에 공감했다.

작업을 끝내고 나면 보통 하루정도 내버려둔다. 색소를 빨아들인 무거운 석회는 물속에 가라앉고 그 위에는 색소가 없는 맑은 물이 남는다. 이후 맑은 물은 버리고 소쿠리 위에 광목천을 댄 뒤 색소앙금을 붓는다. 며칠 동안 색소안의 물이 한 방울씩 서서히 떨어지고 여분의 수분들이 최대한 빠져나가게 되면 미람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미람만으로는 염색을 하지 못하고 안에 남아있는 석회와 색소를 분리시켜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분리를 도와줄 강한 알칼리 성분이 필요한데, 조상들은 잿물을 이용했다. 미람과 잿물을 일정한 비율로 잘 섞어주면 석회 가루는 밑에 가라앉고 위에는 색소와 알카리가 섞여 마침내 염액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염액을 따뜻한 구들장 위에 최소 한 달 저도 발효를 시켜주면 다음해에 쓸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 필자는 막걸리 빚기 체험을 하며 발효 과정을 관찰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막걸리는 누룩 때문에 발효가 되면서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염액의 경우 어떤지에 대해 묻자, 홍 실장은 발효 중인 쪽 염액은 소리가 들리지는 않고 구더기 같은 벌레가 헤엄치고 다닌다고 말했다. 벌레라니,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스카프에 쪽빛을 담기까지

설명은 길었지만, 직접 물을 들이는 과정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천연염색은 천연 재료로 만든 피염물에만 염색이 된다. 필자는 텐셀이라는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 스카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텐셀은 시중에서 속옷 재료로 많이 사용되는데 실크에 버금갈 정도로 감촉이 좋았다. 홍 실장은 실크로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실크는 알카리에 약한 반면 100% 면인 텐셀은 알칼리에 강하고 산에 약하다고 답했다. 색을 입히는 모든 과정이 과학의 연속이라는 점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색만 고운 스카프는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문양을 먼저 새기기로 했다. 문양은 홀치기 기법을 이용했는데, 노끈으로 스카프의 일부분을 묶은 뒤 염색을 하면 해당 부분에 무늬가 새겨지는 방법이다. 이는 팽팽하게 묶은 부분에서 수분은 흡수되지만 색소가 침투하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그라데이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종이접기를 하듯이 노끈을 천 사이에 넣고 대각선 방향, 일정한 두께, 앞뒤로 조심스럽게 접어줬다. 설명을 들을 때는 간단하고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지나치게 촘촘하거나, 엉성하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평소 손재주가 좋은 편이 아니었던지라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이후 천 끝으로 나온 양쪽 끈을 쭉 필자의 방향으로 최대한 당겨줬더니 천이 밀려 꽃송이 모양이 됐다. 또 양 끈이 풀어지지 않게 잘 묶어줬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 때 팔 힘이 모자라 제대로 당기지 않았던 탓에 그라데이션 효과가 연하게 나왔다.

그러고 나서 해당 천 뭉치를 물속에 담가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세게 주무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치 아기 다루듯이 부드럽게 다뤄줘야 했는데 이는 천이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드디어 쪽 염액을 이용해 색을 입힐 차례가 됐다. 가까이에서 본 쪽 염액은 겉은 검푸른 색, 속은 진한 초록색이었고 냄새가 꽤나 지독했다. 벌레가 헤엄쳐 다닐까 두려웠다. 혹시나 옷에 묻을까 걱정돼 평소 잘 입지 않는 옷을 입고 왔는데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갑을 끼고 본격적으로 염액 속에 손을 집어넣으려는 찰나, 홍 실장은 몇 가지 유의점을 강조했다. 절대 세게 문지르지 말 것, 공기와 접촉시키지 말 것, 천 뭉치 사이 주름을 잘 펴줄 것! 물 위로 올라오면 산화되며, 주름 사이를 잘 펴줘야 노끈으로 묶은 부분에 무늬가 잘 새겨지기 때문이다. 이 점을 마음속 깊이 다짐하며 작업에 임했지만 팔이 아픈 나머지 중간에 몇 번 수면 위로 천 뭉치가 떠올라 속상했다. 더군다나 바로 옆자리에서 염색 작가들이 같은 염액 통에서 작품을 하고 있던 중이라 파동이 생길 때마다 눈칫밥을 먹었다.

한편 잘 눌러준 천 뭉치는 밖으로 꺼내 천이 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남은 물기를 짜줬다. 물속에서 초록색 물이 들었던 천이 공기를 만나면서 짙은 푸른색으로 변하는 과정이 신기했다. 필자를 지켜보던 한 작가는 완성된 스카프를 어머니께 선물할 예정이라는 말에 아마 잘 염색된 스카프를 보면 엄마한테 주기 아까울 것이라고 말하며 스카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위 과정을 총 세 번 반복하면 연구소에서의 과정은 끝이 난다.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홍루까 하늘물빛 전통 천연염색 연구소 대표는 빨래걸이에 걸린 염색된 스카프를 보며 기대했던 것보다 염색이 잘 된 것 같다. 문양도 잘 나왔다고 칭찬해줬다. 그나마 지쳤던 몸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천은 집에 가져가 햇볕에 이틀 정도 말리면 되는데, 날씨 탓에 3일을 말렸다. 건조된 천은 강한 알칼리성이기 때문에 건강에 해롭다. 따라서 강한 알카리성에는 반대인 산을 섞어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중성으로 맞춰줘야 했다. 뜨거운 물에 천을 넣고 식초 한 숟갈을 섞어준 뒤, 4시간 정도 가만히 놔두면 된다. 필자는 천의 길이가 2m나 되는 점을 고려해 욕조에서 진행했다. 만족해하며 4시간이 지난 뒤, 욕조를 살펴보니 파랗게 변한 물과 함께 수면을 따라 파란선이 생겨버려 매우 당황스러웠다. 혹시 쪽 염색을 할 사람은 이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부모님께 들키기 전 흔적을 지우기 위해 몇 번을 비누칠 했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중성세제로 손세탁을 했고 햇볕에 말려줬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쪽빛이 눈부신 파란 스카프를 완성했다. 인공적이지 않고 깊은 멋이 있는 쪽빛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얼었던 물이 녹고, 청정한 하늘이 눈부시다. 곧 푸르른 새이파리가 돋아날 것이다.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서서히 따스함이 맴돌고 있다. 새봄을 맞아 가족, 친구,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늘물빛 스카프를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강지혜 기자  jj030715@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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