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친구의 크레파스통을 열어보면 그 친구의 컬러 취향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떤 친구는 분홍색 크레파스가 몽당연필이 돼있고, 또 다른 친구는 닳고 닳아 뭉개진 크레파스가 굴러다니기도 했다. 좋아하는 색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어린마음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잘 쓰지 않는 색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통에 고이 보관해놓고 언젠가는 쓰겠지, 하고 다양한 색깔을 보며 마음 또한 알록달록해지곤 했다.
 현대사회에는 무수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알차고 좋은 정보도 있고. 홍보성 정보와 온갖 유언비어도 많다. 따라서 올바르고 필요한 정보를 걸러서 수용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역할이 됐다. 소비자는 뜻에 따라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 그만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사안은 중요하다. 소비자의 흥미가 없으면 ‘소비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언론의 역할은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사안’도 함께 알려할 의무가 있다. 사랑받는 분홍색 크레파스나 금색 크레파스로 칠한 세상만 담을 수 없다. 누군가는 보라색을 좋아할 수도 있고, 무언가를 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색일 수도 있다. 때론 보랏빛 세상도, 곳곳에 물든 검은빛 세상도 알아야만 한다. 알기 싫은 것, 관심이 없는 것도 알려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간혹 학보사 기자들이 취재를 하면서 이미 끝난 사안이라며 곧잘 논란이 되곤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필자도 막막하다. 당사자들이 합의해 좋게 끝난 사안으로 마무리가 됐으면, 더 이상 대중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는지 갈등이 된다. 괜히 상처를 벌어지게 해 고춧가루를 뿌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당사자가 기사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기사가 나가지 않는 게, 과연 올바른 언론의 역할일까. 무엇을 택하든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하다. 대다수의 경우는 학우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는 쪽으로 기사를 내려고 하기에, 취재거부를 당하면 그 사건은 그냥 묻히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결국 무슨 색이 쓰였는지 모르는 도화지 위에 검은색 크레파스로 뒤덮는 수밖에 없다.
 아마 이번학기에도 자잘한 사건 사고부터 시작해서, 학교에 여러 문제들이 불거질 것이다. 그리고 인하대학신문사는 그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파헤칠 수밖에 없다. 학우들은 눈이 멀지도 않았고, 귀가 막히지도 않았다. 문제없는 사회는 발전도 없다. 그 문제를 인식하고, 꼬집고, 치료하면 된다. 본인이 실수한 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비판을 수용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검게 칠한 도화지 위에 *스크래치 기법으로 알록달록한 선을 그려낼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크레파스를 색칠한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한 다음 이쑤시개, 송곳 따위로 긁어서 바탕색이 나타나게 하는 기법

백종연 편집국장  jy_100@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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