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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간의 글루텐 프리(Gluten Free) 프로젝트

지난 4월에 방송됐던 KBS 예능프로그램 ‘인간의 조건-고기, 밀가루 없이 살기’편이 한동안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었다. 식당에 가서도 쌀밥을 먹지 못해 직접 사간 현미로 따로 밥을 지어달라고 부탁하고, 100% 현미로 된 떡을 구하거나, 밀가루 없이 바나나만으로 팬케이크를 만들어보는 등 갖은 노력을 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안쓰러움’ 그 자체였다. 당시 방송을 보던 필자는 ‘저건 실패하면 안 되는 방송이니까 그런 거고, 밀가루랑 고기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생이 되면서 자취를 시작한 필자는 평소에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반찬 이외에는 주로 외식을 일삼거나 라면이나 3분 즉석식품과 같은 밀가루가 ‘필히’ 들어간 식품들을 자주 먹어왔던 터라 밀가루가 없는 음식을 먹는 생활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필자가 한 달 간 밀가루가 조금이라도 첨가돼 있는 모든 음식들을 전부 끊고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건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호기심도 있었지만, 한 달 동안 밀가루 없이 직접 생활해보고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평소에 밀가루를 달고 사는 필자가 자발적으로 이런 결심을 하는 날은 왠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1주차
밀가루 없이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첫 날은 예상외로 쉽게 넘어가는 듯 했다. 전날 있었던 가족 행사에서 마치 전장에 나가듯 앞으로의 한 달에 대비해 온갖 밀가루 음식을 실컷 먹고 돌아왔던 터라 ‘라면이나 피자, 치킨처럼 누가 봐도 밀가루로 덮여 있는 음식들만 입에 대지 않으면 되겠지’라는 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밀가루를 먹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를 경계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방학 중에도 이어지는 회의 도중에 늘 점심 메뉴로 먹었던 치킨이 들어간 도시락을 무의식적으로 골랐지만 “너 치킨 먹어도 돼?”라는 말을 듣고는 급하게 다른 메뉴로 바꿔야 했다. ‘내가 이렇게 아무런 경계 없이 생활하다가는 나도 모르는 와중에 밀가루를 먹고 못 알아차릴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에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는 내가 먹는 모든 음식에 밀가루가 들어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밀가루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볶음밥을 먹다가도 문득 밥 속을 한 번 들여다보고, 밥 속에 들어있는 햄을 보며 혹여 최근의 햄 제조 과정에 새로이 밀가루가 추가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어 밥을 먹다가 검색을 하기도 했다. 집 앞 근처로 장을 보러 가도 평소 같으면 한 시간 안에 필요한 식품들을 다 사고도 남았을 텐데, 혹시나 밀가루가 들어갔나 싶은 마음에 일일이 뒷면의 성분표를 확인하느라 더 오래 걸렸다. 습관처럼 샀던 간식거리도 전부 끊어야 했다. 왜 마트에는 밀가루 없이 만들어진 빵은 없는지, 괜시리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2주차
주말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먹을거리도 놀 곳도 넘치는 홍대에서 밀가루가 없는 음식을 먹기 위해 고깃집에 갔다. 지난 약속에서도 밀가루를 피해 고기를 먹으러 갔었는데, 이쯤 되니 밀가루를 못 먹는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온갖 고기를 통해 해소하는 경지에 이른 듯 했다. 하지만 고기를 먹을 때도 주의해야 할 점은 있었으니, 바로 함께 제공되는 쌈장과 된장찌개였다. 쌈장에 사용되는 밀가루와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된장에도 밀가루가 첨가돼 있었기 때문에 양념장에는 일절 손을 댈 수 없었다. 맨 고기를 먹는 내 모습을 보며 마주앉은 친구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너 한 달 동안만이 아니라 영영 그렇게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물었다. 나는 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평소에 과자와 빵을 쌀밥보다 더 달고 사는 필자의 친구는 간만에 만난 친구가 하다못해 된장찌개 한 숟가락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필자 스스로가 정말 딴 세상에 사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버블티를 마셨다. 따라 마시고 싶은 마음에 검색해보니 버블티에 들어가는 버블 알갱이의 주 원료는 ‘타피오카 전분’으로, 밀가루에 비해 칼로리는 낮고 물에 반죽하면 찰기가 강해지는 성질을 지녔다고 한다. 고기를 제외하고 드디어 좋아하는 음식 중에 밀가루가 없는 음식을 찾았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기분이 날아가는 듯 했다.

3주차
개강을 하루 앞두고 동기 언니와 잠실로 공연을 보러 갔다. 점심 때 만나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회 덮밥으로 식사를 하고, 입가심을 한답시고 슈퍼마켓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샀다. 이제 마지막 한 주만을 간신히 바라보고 있었던 나의 방심은 여기서 또 한 번 터졌다. 무심코 고른 초콜릿 아이스크림콘의 포장지를 뜯어 먹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싶어 생각을 거듭하다 아이스크림 겉을 감싸고 있는 과자를 발견했다. 아뿔싸….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초콜릿 아이스‘크림’ 부분만 먹었지 겉의 과자에는 입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이걸 먹으면 2주간 잘 참아왔던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이었으니, 절대로 먹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변에 아이스크림을 버릴 만한 적당한 쓰레기통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버스가 도착했다. 먹다 만 아이스크림콘을 손에 쥔 채로 좌석에 앉으니, 옆에서 동기 언니가 그런 필자의 모양새가 꽤나 웃겼던지 쉴 새 없이 킥킥대며 웃었다. 8월 말이라 한창 더울 무렵이어서 손에 든 아이스크림은 빠르게 녹아가고 있었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좋아하는 가수 서태지의 어머니가 준 요구르트를 성화봉송하듯 팔을 쭉 뻗은 채 그대로 집으로 들고 왔던 여주인공의 모습마냥, 마저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한 채 아이스크림을 들고 앉아 있는 필자의 모습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웃겼다. 차라리 언니처럼 얼음으로 된 아이스크림이나 살 걸, 방심했다가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지하철 역사 내부에 있는 화장실에 도착할 때까지 버리지 못한 아이스크림은 그런 필자를 비웃는 듯 더 가열차게 녹아 흐르고 있었다.

4주차
개강과 더불어 마지막 주가 밝자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이번 주만 버티면 되는구나’ 싶은 기쁨과 ‘그래도 용케 한 달을 버티긴 버텼구나’ 하는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친구들에게 이번 주만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으로 점심을 먹자고 양해를 구한 뒤 학교 후문에서 알밥과 두루치기, 닭갈비 등 고기류나 야채가 들어간 밥 위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지난 학기만 해도 밀가루가 그득하게 들어간 칼국수나 돈까스 등을 자주 먹었었는데…. 하지만 일부러 신경을 써서라도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다보니 피부에 자잘한 트러블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내 식습관에서 변한 것이라곤 밀가루뿐이었는데, 먹었을 때와 안 먹었을 때의 차이가 피부로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개강 첫 주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주말에 추석연휴를 맞아 고향으로 내려갔다. 주말 내내 가족들과 함께 꼬지를 만들고 전을 부치며 추석 음식을 장만했다. 하지만 필자의 밀가루 없이 살기는 주말이 지난 월요일에야 끝나기 때문에 밀가루가 들어간 전을 주말 동안 먹을 수 없었다. 주말 내내 전을 부친 탓에 온 집안에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정작 나는 그 음식을 먹지도 못한다니. 이보다 억울한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밀가루 없이 지낸 4주가 끝이 났다. 과연, 처음 시작할 때 필자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밀가루 없이 살기란 단순히 면과 과자류만 피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쉬운 미션은 아니었다. 비록 한 달 간 식단에서 사라진 밀가루의 부재를 고기를 비롯한 여타 음식들로 부족함 없이 채웠던 탓인지, 방송 속 출연진들이 말했던 것처럼 ‘턱 선이 살아났다’, ‘신장 기능이 좋아졌다’와 같이 신체적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만큼 밀가루가 필자의 평소 식생활에 얼마나 깊게 스며들어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작은 입자의 흰색 가루 형태인 밀가루만이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밀가루를 섭취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호주 출신의 인기 패션모델 미란다 커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하얀 음식은 먹지 않아요. 그건 독이니까요’. 물론 그녀가 말한 ‘하얀 음식’으로 대변되는 밀가루와 설탕, 흰 쌀이 식생활의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과다 섭취했던 사람이라면 그녀의 말처럼 건강을 위해 조금씩 줄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필자가 한 달 간의 체험을 통해 밀가루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녹아 있는지 깨달았듯이 말이다. 다만, 밀가루와 흰 쌀이 음식에 첨가돼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을 높여주고, 설탕이 달달하게 적당량의 간을 맞춰 풍미를 돋워주듯이, 싱그럽고 건강미 넘치는 밥상에 때때로 이들을 더해 가끔은 몸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은 어떨까. 물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고기와 밀가루 식품을 먹지 않으면 장수한다지만, 그것들을 먹지 않으면 딱히 장수할 이유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도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김다빈 기자  dabin39@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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