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환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명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가 있다. 이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 순인데, 인간의 심리적 변화를 다루기에 수용의 단계를 설명할 때도 사용된다. 필자는 학교에서 어떠한 사안이 이뤄질 때, 혹은 이슈가 불거질 때도 5단계를 빗대어 비유하고 싶다. 사안이 떠오르면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부정하는 사람들로 나눠지고, 합리적인 근거를 찾으며 분노하다가 결국 약자의 입장이란 것을 깨닫고 타협한다. 이어 좌절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극복하고 수용하게 된다. 학제개편에 대한 사안도 이러한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수용단계의 위치가 개인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한 쪽은 분노로 차있고, 다른 한 쪽은 타협을 하려 한다.
 요즘 들어 의견이 하나로 화합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한다. 학창시절 배웠던 ‘화합’이란 소수의 암묵적인 동조가 포함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의견이 갈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의견이 갈리고 다수결의 입장이 선택돼 결과론적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서로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보였는가가 중요하다. 다수에게 편입된 ‘억울한 소수’와 ‘어느 정도 동조하는 소수’는 명확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명한 사람은 어려운 말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거리가 먼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니, 학내 운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학우들은 자연히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사실 학우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또한 하나의 자료를 가지고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니, 학우들은 눈을 감고 박수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끌리듯 갈팡질팡한다. 학우들의 대표들에게까지 불신을 내비치는 현재의 민심은 그야말로 풍비박산난 상태다.
 독일 최초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자신의 핵심 정치 공약이었던 원자력 발전 정책을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를 본 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과감히 포기한다. 표면상으로는 하루아침에 말을 바꾼 것이지만 오히려 지지율은 상승했다. 이는 타당한 근거를 들며 자신의 입장을 굽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의 결과였다. 주장을 굽히고, 양보하고, 사과해도 대중은 그녀가 ‘승리’했다 입을 모아 말한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일관된 자세가 아닌 진정성이었다. 덧붙여 타인의 생각도 인정할 줄 아는 유연성의 자세야말로 대중이 갈망하는 게 아닐까 싶다. 메르켈은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 가도 된다. 그러나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야한다’며 유연성을 강조하는 명언을 남겼다. 이를 본받아, 현재의 본교는 보다 융통성이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학우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는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젓는 것은 좋지만, 승객이 없는 배는 운항할 이유가 없다. 멀리 가는 게 이로울지, 빠르게 가는 게 현명할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백종연 편집국장  jy_100@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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