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바깥 공기가 제법 차가와지고 있다. 올해도 이제 두달이 채 남지 않았다. 가을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누런 잎사귀들이 굴러다닌다. 하나의 나뭇잎도 생명을 지녔다면 이 가을에 우리는 수많은 생명과 작별을 고하고 있다. 시들어가는 가을 저녁에 40대 중반을 지나는 나를 돌아본다. 1인당 국민소득 $200시대에 태어나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경제 막바지에 유소년기를 거쳐, 전두환 대통령의 과외금지령하 중고교를 마친 80년대 후반 학번. 압축성장 덕에 검정고무신(만화)의 보릿고개는 빗겨갔지만, 요즘 젊은 세대처럼 먹거리가 다양하지는 못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급했던 아버지세대와는 달리 의식주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시기에 성장했지만, 아직도 안정되지 못한 느낌이다. 이런 내게 얼마전 아내가 내린 진단명이 있다: 40대 우울증. 안쓰러운 7080세대와 아래로는 3포세대라는 2030세대 사이에 꽉 낀 샌드위치 느낌이다. 동세대(cohort)로 눈을 돌리면 1%대 99%, 오륙도, 사오정, 구조조정, 종합착취세트 비정규직, 참사공화국. 삶이 퍽퍽해진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이쯤이면 조어(造語)도 예술의 경지이다. 설익은 대안 논쟁은 끝이 없지만 실현가능한 대책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이런 내 눈을 사로잡는 두 가지 글이 있다. ‘늙은 애비가 아들에게(Dear son)’란 편지와 ‘청년 눈높이를 말하기 전에’라는 2030세대의 항변론이다. 첫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어느 날 늙고 정신 나간 나를 보게 되거든 인내심을 가지고 이해해 주렴. 식사 때 지저분하게 흘리고 옷도 잘 입지 못할게다. 대신에 이런 것들을 네게 가르쳤던 과거를 회상해 보렴. 대화 도중에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도 끊지 말고 들어주렴. 어린 시절 너를 잠재우기 위해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했단다... (중략) 내 힘이 부쳐 걸을 수 없게 되면, 네 손을 빌려주렴. 네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내가 해준 것처럼... (중략) 언제가 알겠지만, 수많은 실수 가운데에서도, 나는 네게 가장 좋은 것과 좋은 길을 마련하려 노력했단다...” 외국 인터넷에 떠도는 작자 미상의 글이지만 참 와 닿는 글귀다. 나도 부모세대에게 불만이 없진 않지만, 자식을 키워가면서 부모라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변명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성세대가 되면서 드는 우려도 있다. 지난한 초중고 그리고 대학입시를 거쳐 왔지만 압축성장의 후폭풍으로 취업난, 고용불안정을 겪는 3포 세대가 토로하는 원망이다. “굶주림과 가난에서 탈피를 지상과제로 여겼던 세대에게 ‘한강의 기적’은 위대한 일이였다. 독재라도 상관없다는 ‘잘 살아 보세’의 성공신화 이면에 노동자 착취건, 인권유린이건, 지방의 공동화건, 알고 싶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으로 앞 세대로 인해 불행해진 2030세대에게 과거의 경험과 파시즘적 속도의 성장을 강요하지 마시라.”란 논조의 글이다.
 수많은 mismatch와 세대간 갈등에 낀 40대 후반. 위로 원망할 것도, 아래로 해결해줄 대안도 마땅치 않다. 돌이켜 보면 애당초 정답이란 건 존재하기 어려운 것 같다: 무수한 해답들이 있을 뿐. 이 순간에도 내 방 벽시계는 말 많고 탈 많은 2014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열려는지 쉬지 않고 가고 있다.

한재준 글로벌금육학과 교수  jy_100@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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