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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은 없다

 예전에 쓴 기사가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름 열심히 중립을 지키며 작성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타인이 생각하는 중립의 기준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
 무릇 신문 기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신문은 중립이 중요하다. 기사를 작성할 때 기자들이 유의하는 부분 중 하나다. 그러나 과연 진정한 ‘중립’은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가 당시 시대를 반영하고, 역사가의 가치관과 사상이 포함되듯 신문 또한 시대와 기자를 반영한다.  따라서 사건 그대로가 보여 질 수 없다. 신문이 절대적인 중립을 갖는 것은 어떤 심판을 데려와도 어려운 일이다. 지나친 편향이나 억지스러운 비약이 문제일 뿐,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점에 있어서는 각자의 당위가 존재한다. 편향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향보다 더 좋지 않은 게 ‘중립인 척’이 아닐까. 드라마에서 대놓고 나쁜 악역보다, 겉으로는 착한척하며 뒤에서 나쁜 짓을 하는 악역이 더 비난받는 것처럼 말이다.
 중립에 대해 강조하는 건 비단 신문뿐만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스스로를 중립인 사람이라 자처하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어찌 보면 중립은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아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중립이란 물음표과 느낌표가 공존하는 것과 다름없다. 중립이란 기준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중립을 지켰다 생각해도 타인에게는 물음표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느낌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논조가 있어야 한다. 중간에 있는 ‘척’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논조를 말하는 것이 솔직해보이곤 한다.
 미국의 진보적인 역사학자이자 운동가인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란 책이 있다. 이는 무서운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 위에 서있다는 것은 이미 특정 목표와 방향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므로 ‘기차 위에서 중립적인 체 객관을 가장하는 것은 위선이다’는 저자의 주장을 담고 있다. 지금의 우리도 움직이는 기차 안에 있다. 단순히 기차에 끌려가기보다 자신의 논조를 찾아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지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인하대학신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필자는 인하대학신문이 중립인 ‘척’ 하는 신문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학우들을 대변하고 학교를 감시하는 언론인만큼, 학우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인하대학신문은 우리학교 학우의, 학우에 의한, 학우들을 위한 신문이니까 말이다. 기사 하나를 작성하더라도 짧게는 몇 시간부터 길게는 며칠에 걸쳐 ‘중립’이란 이름의 시소 위를 위태로이 오고가는 기자들의 노고가 인하대학신문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종연 편집국장  jy_100@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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