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할 때, 자민족의 문화라는 것이 다양한 이질적 문화의 혼합을 통해서 형성되어 온 민족이라면, 혹은 외래문화의 토착화를 통해서 자민족의 문화적 근거를 형성시킨 민족이라면 그들의 문화적 포용성은 상당한 탄성을 지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양상으로 형성된 문화는 그 지역 사회 구성원간의 토착성에 근거한 질서보다는 다양한 유동성과 다원적 공존성의 질서를 위한 합의와 적응능력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풍토에서는 빈번한 변화의 충격에 익숙하기 때문에 ‘온고지신'(溫故知新)과 같은 자기 성찰적, 또는 자기 수양적 가치관이나 전통을 중시하는 관념보다는 혁신, 진보, 창조라는 명분의 부단한 변화에 더 익숙할 수밖에 없다.
　현대와 같이 복잡다단한 시대에서는 이와 같은 문화적 풍토나 가치관이 보다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받기 마련이기에 현대의 문화는 일견 도전 정신과 개혁 정신의 승리로 비쳐지기도 하며, 지키고 가꾸어 나가기보다는 과감히 버리고 바꾸어 나가는 것을 선호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현대의 문화는 ‘개혁과 변화의 역사'라는 수식과 밀접하게 결합된 듯 하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지나간 역사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과거에 비추어 오늘의 현실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현실의 조건에 비추어 과거는 유효성이 소실되었다는 당위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변화'의 목적은 현재의 조건에 적절한 최대의 유효성을 찾아감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제기되는 개혁의 논리를 접하다보면 아예 ‘변화' 그 자체가 개혁의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변화에 따른 결과를 채 경험하기도 전에 다시 변화를 추구하고, 그 변화의 결과를 제대로 관찰하기도 전에 또 다른 변화를 요구받다 보면 ‘변화'는 그 자체로써 목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더 염려스러운 것은 부단한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변화'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결과의 유효성이기 보다는 ‘변화 이전과 이후의 차별성'에 치중될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변화만이 살 길'이라는 발전 지향적 인식이 자칫 ‘바꾸어야만 살 수 있다'는 강박관념으로 변질된다면, 변화를 통한 발전의 의도는 ‘바꾸기 위한 변화', 심지어는 ‘뒤집기 식의 바꾸기' 속에서 질식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무한 경쟁 시대에 경쟁력 우위를 다투는 치열한 생존 조건 속에서 변화와 혁신에 대하여 소극적인 자세는 아무래도 시대착오적 진부성이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범한 개개인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추구하는 목적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지기 마련이다. 변화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소수의 의지가 아무리 확고하다 해도 변화에 이끌려가는 다수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변화가 강요되기 마련이다.
　무엇을 위한 변화이며, 무엇을 향한 변화인지, 현실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지적에 연계하여 ‘변화'가 준비되고 결정되고 있는지, 변화에 동참해야 할 평범한 다수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요즘의 세태를 보면서 문득 떠올려보는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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