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에서 국사를 배울 때 안타까웠던 것은, 왜구의 침범이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라고 보낸 조정 관료들이 상반된 예측을 내세워 다툼을 벌였고, 결국 그 것이 세력 다툼의 결과라고는 하지만, 왜구의 침범이 없으리라는 잘못된 판단에 따르기로 하였다는 등 참으로 난감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그러면 몇 백 년 전 과거의 일로만 남는 것일까? 이라크 파병 결정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현지답사를 담당하였던 전문가들의 의견도 상반된 견해를 이루었고, 군용 헬멧의 안정성에 대하여 서로 상대방이 잘못된 실험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는 비방 방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 군사력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도 그렇겠지만, 우리에게 이런 일들은 어째서 되풀이되는 것일까? 설마 패싸움 벌이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을 빈대라고 생각하고 초가삼간 다 태워먹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가?
　그것보다는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할 전문가가 없거나, 전문가는 어딘가에 있지만 그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 아닐까? 최소한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대하여 자괴감을 갖지 않는 한, 어떤 현안에 대해 전문적이고 종합적이면서 최종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는 꼭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는 있지만 그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고 나중에 목소리 큰 사람이 되어 이기려고 하니, 서로 큰 소리만 내다보면 그 결론에서 본말이 전도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대학 구성원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영, 공학적 개념이 없는 사람이 경영에 대해 논하거나, 실험실습을 담당하는 것이 어색한 것과 마찬가지로, 법, 행정적 경험이 없는 사람이 규정을 만들고 행정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대학 내에서 전문적 지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대학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일 텐데, 우리는 과연 자신의 전문 영역을 스스로 이루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전문 영역을 존중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대학생들이 예비 전문인으로서의 지식을 구체화하지 않고 몸으로만 때우는 일들을 보면서 더욱 이상한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매년 반복되는, 그래서 정기적 현상이 된 본관점거, 사무실 집기 운반 게다가 그 집기들이 비에 젖지 말라고 친절하게 비닐 포장……. 한 편의 행위 예술이다. 이런 와중에 학교 예산을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법적으로 관련 법규정, 헌법적 기본권 등을 다투는 대학생들의 글은 본 기억이 없다.
　70년대, 80년대 온갖 대자보를 떠올려도 감정에 호소하는 글만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니, 몇 십 년 동안 우리 대학인의 전문 지식 활용 능력은 제자리인가? 후문을 중심으로 한 글들을 보면 느끼게 되는 단상이다.
　그리고 마침 한글날이므로, 학교 길에서 걷다가 보게 되는 글들 중 공중에 떠있는 것은 ‘플랜카드'나 ‘플랑카드'가 아니고 ‘플래카드'이다. ‘저희 학교'가 ‘우리 학교'로 바뀌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소한 한국의 우수대학을 지향한다면, 스스로 우수한 전문 지식을 함양하고 실천하여야 하는 것 아닐까?

조훈 (법대)교수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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