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의 집은 도서관 앞에 있었다. 동화책을 빌려와서는 읽고서 다시 도서관으로 가곤했다. 그곳에서는 책만 있지 않았다. 경주에서는 최후의 신라인으로 불리던 미술가 윤경렬선생이 신라 서라벌 얘기를 들려주었고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들리면 불러 세우고서 엿판 주위에 몰려드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엿을 나누어주었다. 아름답게 책가위하는 방법도. 나의 도서관 기억에는 이런 봄날 봄꽃 피는 소리들도 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주지 않는다면? 아테네의 아고라 근처의 로마 제정시대 도서관 유적지에서 나온 대리석 비문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어떤 책도 가지고 나갈 수 없다. 도서관 개관 시간은 첫 번째 호라(오전 7시)에서 여섯 번째 호라(정오 12시)까지다.” 왜 책은 도서관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까? 왕이 책들의 통찰력과 비판의 힘에 대해 두려워했고 더구나 통제권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다고 해석하는 자도 있으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도서관 왕도 고대 알렉산드리아 통치자도 책의 가치는 수집, 보관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책의 내용이 왕의 통치에 위해한 것이라면, 도서관 내에서도 금서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책들은 보물처럼 귀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오랫동안 책은 귀중했다. 책을 구입하면 책가위하여 만지며 읽었다. 그런데 지금은 책가위하며 책을 읽는 학생을 보기란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물론 학생들이 많은 책을 구입하기는 어렵겠지만, 주변에 도서관들이 있고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쉽사리 읽을 수 있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독서의 해이다. 이 배경에는 한국의 독서율 저하도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독서율(성인 10명 가운데 만화, 잡지를 제외한 일반도서를 한권 이상 읽은 비율)은 2004년 76%, 2009년 71.7%이었는데, 2010년 65.4%로 6.3%나 감소했다. 2011년에는 66.8%로 약간 증가했지만 EU 평균 독서율 71%보다는 4.2%나 낮다. 한국 성인 10명 중에서 3.3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라는 캐치프레이즈도 걸었다. 정부 책읽기 행사가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까도 궁금하고 지켜볼 일이지만, 진정 궁금한 것은 어떠한 책을 읽느냐 하는 의문이다. 만나는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개는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는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낮은 독서율 그 자체마저도 품위있는 교양시민의 인격도야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참된 독서, 그것은 읽었던 책을 또 읽어야 하고 또한 그렇게 할 때마다 책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되는 고전의 그것이다. 책가위해야 하는 까닭은 오래 읽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규환 사회과학부 교수  inhanews@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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