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1986년 5월 3일. 얼굴에 치약을 허옇게 바른 선배가 스피커를 태운 리어카를 끌고 있다. 그 뒤를 수만의 군중이 따르고, 그 앞을 수천의 전투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곧이어 최루탄이 터지고 토기몰이를 당하는 군중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장면 2: 2011년 8월 23일. ‘00문화기행단’이란 작은 깃대를 든 안내원을 따라 남녀노소가 차이나타운을 가로질러 개항장 인천의 시공간을 되짚는다. 이윽고 예술의 성찬이 차려진 아트플랫폼을 지나며 탄성을 올린다.

두 풍경에는 25년의 시간차가 있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동일하다. 변혁운동에 들떠 주안역 거리를 달리던 86년의 맹랑한 청춘과 ‘월미도’가 일본인 유원지로 개발되었음을 󰡔만한철도창가󰡕에서 배운 2011년의 수척한 장년을 사는 나. 인천이 하사한 이념(정치)과 문화(취향)의 시간차적 경험은 사실 고유할 것 없는 보편적 경험의 일종이다. 강경애와 조세희 소설 속 격정의 노동운동이 벌어진 공장도, 이상과 오정희 소설의 불안한 내면과 균열된 주체가 쏘다닌 분열의 거리도 인천의 어디인가였다.

사적인 경험과 문학적 체험 속의 인천 풍경을 잇대어 본 것은 나 또한 포함된 ‘군중’의 실체가 문득문득 궁금해져서다. 이념과 변혁 대 취향과 유희 쯤으로 변별될 수 있는 저 풍경 속 ‘군중’은 서로에 대한 ‘구별짓기’가 과연 얼마나 가능한가? 전자는 집단과 공동체로, 후자는 개인과 다원성으로 각자의 욕망을 발산하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청년들에게 두 ‘표지’는 대립적 경계선보다는 존재를 다원화시키는 일종의 프리즘에 가깝다. 이념의 엄격성과 취향의 자율성. 이 보편적인 공식은 더 이상 적용 가능한 삶의 문법이 아니다. 청년들의 고유성은 이념의 자율성과 취향의 엄격성 속에서 확보된다고나 할까?

나는 이런 젊은 움직임을 ‘구호’를 ‘환호’ 속에 기입할 줄 아는 주체의 형성으로 읽어보고 싶다. 가령 안철수 현상 같은 것. 그에 대한 열광은 미래를 꿰뚫는 견고한 이념과는 도대체 거리가 멀다. 사실 그는 개인적 ‘취향’의 공생과 이것을 성장시킬 공정한 시스템을 줄곧 요청해왔다. 더불어 그에 따른 자율과 연대의 윤리가 공동체의 덕목으로 확산되어야 함을 강조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조분조분한 목소리에서 성공과 승리가 ‘더 잘 실패함’ 대한 배려와 존중의 다른 형식임을 뒤늦게 배운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지고 그것이 상대에게 정당한 목소리로 인정되는 순간의 ‘환호’는 제도적 권력과의 결속을 염원하는 ‘구호’보다 당장의 잇속과 효율성 면에서는 훨씬 미련하다. 하지만 그 ‘환호’는, 랑시에르의 말을 빌리건대, “킁킁대는 동물로 취급되었던” 약자와 실패자, 아니 우리들을 ‘말하는 존재’로 만든다. 거기서 ‘다중’―각자의 정체성을 가지며 개별적으로 행동하며, 특정한 사안을 동의할 때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으로 행동하는 자들―이 탄생한다. 과연 당신과 나의 자리는 여기 어디에 있을지….

최현식 국어교육과 교수  inh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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