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준필(한국학연구소, 조교수)

얼마전 환갑이 넘은 노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꽤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였다. 출연자들 여럿이 그 합창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나도 울컥했다. 연출자는 화면에다가 ‘도대체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먹먹해 오는 가슴’이라는 자막을 새겨 넣었다. 그랬다. 까닭을 모른 채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몰라서 몰랐을까. 그보다는 그 이유를 굳이 물어 캐내려 하지 않는다는 데 가까웠다.

아무리 많은 언어를 동원해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詩가 생겨나고 씌어지는 것 아닌가 묻게 된다. 시는 늘 설명과 이유의 언어가 부족하다. 아무리 긴 시라고 해도 시라면 여전히 말이 부족하다. 그래서 일상의 의사전달 수단으로서는 부적절해 보인다. 시는 언어의 부족과 결핍이다. 하지만 이 결핍이 때론 경이로운 풍부함을 낳기도 하다. 꽉 채우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어떻게 해도 채울 수 없는 것이 있음을 환기한다.

19세기에 홍길주라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다. 친구 이정리가 당시 왕의 사위였던 홍현주(홍길주의 아우) 집을 찾아 늦도록 있었으면서도 홍길주를 방문하지 않고 떠났다. 이 사실을 알고서 홍길주가 14글자의 짧은 시 한 수를 지어 보냈다. 그 시를 보고 이정리가 놀라 말을 전하기를 “조만간에 이 마음의 아쉬움을 풀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홍길주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만약 시로 표현하지 않고 말로 편지를 썼다면 비록 백 마디를 했더라도 그의 마음에 진짜로 아쉬운 맘이 들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 14글자가 마음에 가득찼던 섭섭함을 어떻게 다 담아내겠는가. 말로 채울 수 없는 그 마음에 14글자를 듬성듬성 박아 보내니, 결국 14글자의 여백에 담겨서 돌아온 것은 친구의 미안한 마음이었다.

홍길주의 벗 하나가 지방관으로 나가 두 명의 기생을 데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옛 정인이고 한 사람은 새 애인이었다. 옛 정인은 관아 북쪽 구석에 처박아두고 자주 눈길도 주지 않고서 매일 밤 새 애인과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이 일을 가지고 뭐라고 말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홍길주가 이런 시를 지어 보냈다. “밤마다 화려한 등불 어른대는 그림자/북쪽 정자엔 그래, 애간장 끊는 이”(夜夜華燈高下影 北亭應有斷腸人). 그 벗이 아무 말 없이 참담한 얼굴로 한참을 있다가 말했다. “시는 정말로 말과는 다른 것인가? 어쩌면 이리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노인 합창단의 노래 앞에서 말이 무기력해지듯이, 언어 속에도 과잉의 언어를 압도하는 결핍의 언어가 있다. 그 결핍은 부족이 아니라 여백의 풍부함으로 이어져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도 있고, 말하지 않아야 아는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냥 저절로 알게 되지는 않는다. 거기엔 적잖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가 시요 문학이다. 말은 사라져도 시는 사라지지 않을지 모른다. 시는 말이 아닌 말의 사원이기 때문이다. 합창단의 소리가 여전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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