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우(사회교육과 전임강사)

법치주의나 공정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이야기 할 때, 그것은 결국 법대로 공정하게 하자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서 법대로 하자고 하면 수긍을 하면서도 무언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고, 왠지 법을 전공한 나로서도 솔직히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마 법대로 하자고 하면 우리 사회에서 도덕과 예절, 관습에 따라 해 보아도 안 되니 우격다짐으로 한번 해보자고 하는 이야기가 되거나, 우리의 의식이 아직은 서구의 법적 사고방식과는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요즘 벌어지는 특혜채용이다 하는 일들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인데, 그러면 법은 무엇하고 있었나 하는 누명을 법이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교육과 법의식, 법문화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법에 대한 변명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법대로 하자는 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나에게 혜택을 주며 공정한 것인지 모른다. 법은 인류의 지혜가 깃든 삶의 문제의 해결방식이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문제를 접하면서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분쟁을 예방하고 서로에게 이익을 나누며 공익을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지혜의 집약체이다. 약속(계약)의 이행 방법,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과정, 인간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 권리, 내 신체와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권리, 최근에는 소비자로서의 권리, 문화와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 등까지 우리의 삶과 질서를 보장하는 모든 규칙이 담겨져 있다.

법을 잘 지키면 경제 성장률이 얼마가 높아진다는 어느 연구자의 분석도 있지만, 이는 법치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오히려 왜곡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 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서로 신뢰하고 예상가능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이루어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을 가장 안정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것인데, 단순히 경제성장을 위해 법을 지키자고 하는 주장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30-40년 동안 세계 유래가 없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도덕과 신뢰를 깨버린 것도 사실이다. 도덕과 신뢰를 깨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법을 깨는 것이었다. 따라서 법대로 하면 손해를 본다는 법의식도 사실은 법에게 탓을 돌릴 것이 아니라 현실을 핑계로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의 탓이다. 얼마 전이 경술국치 100년이었다. 청나라 고염무(高炎武)는 왕조가 바뀌는 것은 왕과 신하 탓이지만, 나라가 망하는 건 필부(匹夫)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물론 지도층의 솔선수범도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우리 자신도 사소한 일에서부터 나라의 흥망성쇠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제발 무엇이든 나에게 적용할 때부터 ‘법대로만’ 한 번 해 보자. 이제 법에게 씌어 놓은 누명도 벗겨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법은 참으로 억울하다.

정상우(사회교육과 전임강사)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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