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층 내부에서 발생하는 부패를 예방하고 교정하는 것은 동서양 역사에서 늘 고질적인 문제였다. 지성사의 한 부분은 곧 집권층의 독단적 신념과 욕망으로 빚어지는 부패에 대한 비판과 교정을 위해 바쳐져 왔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유교 국가체제가 장기간 안정을 가졌던 이유도 이 힘겨운 문제에 대한 부단한 대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유달리 활발하였던 언관과 경연 제도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집권자들에 대한 합법적 비판이 실제로 이루어진 최후의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 군주와 신하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표상하는 한 이념은 ‘충(忠)’이다. 충이란 글자 자체는 진심, 기만하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성리학에서는 ‘진기(盡己)’, 자신의 진심을 남김없이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집권자와 지식인 사이에 이 개념을 둘러싼 이념적 지향은 다르다. 군주는 기만하지 않는 순종을 바라지만, 지식인은 기만하지 않는 비판을 지향한다. 이러한 차이는 역사 내내 집권자와 지식인 사이에 긴장을 유발하였다. 10여년 전 전국시대 초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죽간에 노나라 목공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 어떤 신하가 충신인가 묻는 장면이 나온다. 목공의 시대 집권층은 생산과 전쟁에 신민이 마음을 다해 종사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하였다. 자사의 답변은 간결하였다. “항상 군주의 악을 지적하는 이가 충신입니다.” 물론 목공은 불쾌하게 여겼고 자사를 물리쳤다.

을사사화 뒤에 언관으로 활동한 율곡 이이는 사화의 주역을 탄핵하는 데 앞장섰고, 경연에서는 선조에게 폐정의 개혁에 매진할 것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촉구하였다. 1574년 정월 ?만언봉사?를 올려 받아들여지지 않자, 4월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귀향하였다. 선조는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인간사를 잠시 잊고 자연과 벗하는 은거생활이 좋을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이이는 답하였다. “전하께서는 은거의 즐거움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만, 저로서는 그렇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옛날의 은사는 군주와 만나지 않아, 군신간의 책무가 없었기에 잊을 수 있었고 또한 편하게 산수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신은 은혜를 받은 것이 깊고 무거워 비록 시골에 있더라도 마음은 군주에 대한 염려로 시름하면서 또한 병으로 매번 신음할 것이니 은거하는 것이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단지 하는 일도 없이 봉급만 타먹는 짓을 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것입니다.” 10월, 선조는 다시 이이를 황해도 관찰사로 임명하였고, 이이는 황해도 민정의 폐해를 시정하는 데 힘을 기울여 성과를 이룬다. 집권층의 부패를 막고 교정하는 것은 현재에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부패가 더 교묘하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 부패와 맞서는 곳에 지식인의 책무와 지식의 한 운명이 발견된다.

이봉규(인문학부 교수)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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