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1학기가 시작되었다. 동계방학 내내 조용하기만 하던 학교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10학번 새내기들과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재학생들로 활기가 넘친다. 그러나 이들처럼 새 학기의 시작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는, 아니 그럴 수 없는 학생들도 있다. 바로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에 한창인 4학년들이다. 필자는 정석학술정보관을 갈 때 마다 지하 열람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학우들을 보며 높은 학구열에 대한 감탄보다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초조한 표정들에 안타까움부터 앞선다. ‘대학은 학문의 요람이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지금 우리의 대학은 단순히 취업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들이 신입생 때 꿈꾸던 대학생활이 과연 지금의 이것이었을까?

대학생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스펙(specification : spec)이란 단어는 원래 제품의 사양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구직자들의 학점, 공인영어점수, 자격증보유여부, 봉사활동여부 등을 합한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취업준비생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에 억지로 자신을 정형화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기업이 소비하는 제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르자면 학점 3.5, 토익 800, 다수의 자격증, 봉사활동경험이라는 스펙의 천편일률적으로 대량생산된 제품 말이다. 물론 구직자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준비하는 이러한 과정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기업에서 제시하는 틀에 정체성을 잃고 억지로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사회변화에 부응하는 인재육성의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사회는 인위적으로 포장된 겉모습보다는 학문으로 내실을 다진 인재를 포용해줄 때 우리사회는 더욱더 건강해 질것이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단어의 의미는 시대상황에 따라 확장되기도 축소되기도 한다고 한다. 선배로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10학번 새내기들이 졸업할 즈음에는 지금의 ‘스펙’이라는 단어가 오직 제품의 사양을 뜻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박진수 (기계, 2)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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