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씻고 난 민낯에 꼼꼼히 파우더를 끼얹는다. 무겁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은 꽤나 만족스럽다. TV 홈쇼핑 광고에 나오는 예쁜 언니들이 알려준 대로 했더니 그야말로 감쪽같다. 변신을 끝내고 집을 나서 학교 가는 길에 나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우아하게 쓸어 올리면서 시선을 고정시킨다. 꽤나 그럴듯한 포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들르는 곳은 화장실 거울 앞. 머리카락 한 가닥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웨이브가 져 있다면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화장실 안에서 나는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고 또 보고, 고치고 또 고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TV에 나오는 예쁜 언니들 모습과 최대한 똑같아질 때까지. 그러고 화장실을 나서면서 또각또각 하이힐의 굽 소리에 발맞춰 도도한 척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리를 내뻗는다.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를 구속시킨다. 그러면서 나는 늘 갈등한다. 내 마음은 ‘추워 죽겠는데 쫄바지에 따듯한 누빔 솜바지 입고 덧버선에 운동화 신어야지’라고 하면서도 뇌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에 어김없이 꽉 끼는 청바지에 다리를 끼우고, 뾰족구두에 발가락을 밀어 넣는다.

참으로 모순적이지만 나는 사실 ‘사랑받지 않을 용기’가 없는 것이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꽉 끼는 청바지를 벗고 뾰족구두를 벗어던질 용기가 아직은 없다. 겉으로는 당당한 척, 도도한 척 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소심한 나다.

스스로를 꽤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가부장적인 사회 풍토를 비판하면서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남자들의 말에 발끈하면서도, 규격화된 여성성을 꾸며내고 상품화 되고 정형화돼 있는 미의 기준을 모방하면서 유행을 쫓는 나다. 나 자신만의 주체적이고자 함과 규격화된 여성성을 따르고자 함의 두 가지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면서 늘 갈등을 일으킨다. ‘사랑받지 않을 용기’가 아직 없는 나는, 결국 규격화된 여성성을 따르면서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이 용기없음을, 자신없음을 한탄한다.

알리스 슈바르처는 묻는다. ‘자신의 욕구를 속인 채 자발적으로 구속의 길을 걸으며 계속 아양을 떨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판을 깨뜨리고 마음 맞는 이들과 새로운 판을 짤 것인갗라고.

나는 고민한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자 희망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고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자 하는지. 그러고 나서 나는 대답한다. ‘다른 여성들에게도 존경받을 수 있는, 나의 딸들과 아들들에게 자랑스러운 여성의 삶을 보이는, 자유로 나아가는 길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여성’이 되겠노라고.
여성으로서, ‘사랑받지 않을 용기’로써 내 삶의 뿌리를 찾고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것, 그 ‘황홀한 혁명’이 시작된다.

<김정실 기자>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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