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한 일제시대의 우리나라 문학을 보면 시대적 상황 탓이겠지만 초인을 기다리는 시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에서는 핍박 받는 어두운 상황에서 유대를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원하는 부분을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되는 것 없는 암울한 시대에 모든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하여 행복을 가져다 줄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이야 동서양을 막론한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 보면 현재를 국제적인 지위나 상대적 경제력으로 볼 때 비교적 성공한 시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초인적인 영웅에 대한 기다림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다. 5년마다 있는 대통령 선거를 보면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아닌 일제시대 문학이나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구세주를 뽑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다 보니 출마한 후보들도 자신에게 초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씌워 선전을 하게 된다. 경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앞세워 당선된 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어쩌면 국민 스스로가 창조해낸,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던 초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대한 당연한 실망으로 보인다.

과학기술분야도 이런 초인을 기다리는 국민적인 판타지가 존재하는 곳이다.

“한 천재 과학자가 나타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학문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생산하는 독점적인 산업을 일으켜서 우리나라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와 같은 국민적 환상은 개별 과학자에게는 이를 이용하여 세속적 이득을 얻고 싶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될 뿐 아니라 정부 정책을 바람직하지 않게 왜곡하는데 기여를 하기도 한다.

모두가 기억하는 수년전의 생명과학자의 논문 조작 사건은 막대한 부와 정치적인 권력마저도 가능하게 해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판타지가 이면에 있었다.

최근에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을 모집 선정 중에 있다. 사업의 내용은 세계적인 석학이나 능력 있는 연구자를 유치하여 국내 대학의 연구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해외 석학으로 유치된 학자의 수준이나 체류기간 등의 사업 진행을 둘러싼 잡음은 차치하고, 과연 이런 식의 접근법이 목표한 국내 대학의 연구 능력 향상 및 차세대 신성장 동력의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의문이다.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은 프로야구와 같이 한두 명의 슈퍼스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몇 년전 논문조작 사건에서도 “원천특허 확보로 국부의 창출"과 같은 미신같은 이야기가 진실처럼 떠돌았다.

한 연구 그룹이 비밀스럽게 자신만의 연구를 통해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내는 소설과 같은 이야기는 실제에서는 보기 어렵다.

역사를 통해 과학기술의 빛나는 업적들은 각각의 진도를 서로 오픈하고 같이 토론하는 다수의 우수한 연구그룹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개별 제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앞서 말한 “천재 과학자" 환상은 아이디어를 제품화 하는 기술, 제품을 경제성 있게 생산하는 기술,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등의 실질적으로 가장 어려우면서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성공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있다.

비휘발 메모리인 플래쉬 메모리의 원천특허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샌디스크(SanDisik)사와 플래쉬 메모리의 대표적 생산업체인 한국의 삼성전자의 수익과 위상차를 보면 이 같은 기술들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신화는 양질의 많은 엔지니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이를 체계화하고 단일 목적을 향하여 협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 경영진의 역할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기에 가능했다.

이와 같이 국민에게 부를 보장해주는 기술은 소수의 천재 과학자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보다는 차원 높은 협업을 할 수 있는 다수의 양질의 과학기술자들의 오랜 시간 노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수의 천재 과학자 양성이나 영입보다는 다수의 우수한 연구그룹의 육성, 과학 기술자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도록 이공계 교육의 강화와 처우 개선, 협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인프라의 조성 등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인 초인 판타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환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와 이에 따른 경제적 계속 낭비는 이어질 것이다.

최리노(신소재) 교수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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