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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논단] 역사 현장으로서의 인천
   
 
     
 

여름 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 현재 내 삶의 터전인 인천이 예전에 어떠한 곳이었는지 궁금해졌다. 강화도조약으로 처음 개항되어 수도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 현장을 방문해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개항 시대의 인천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지도를 펴 보았고, 인천역 근처의 차이나타운과 초기 개항지를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요코하마나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다른 나라에 있는 차이나타운에는 가보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에 처음 가 보았다. 다른 도시에서처럼 고풍스러운 패루가 입구에 서 있어서 차이나타운의 시작을 알려주었다. 차이나타운은 제물포항이 개항되고 1884년에 청나라의 치외법권 조계지가 인천에 생기면서 중국인들이 정착하여 생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 때 일본에 의해 상권이 마비되어 화교들이 떠나면서 약화되었고, 해방이후에도 억압정책으로 시들해졌다가 최근에는 시 차원에서 다시 관광명소로 만들고자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렸을 적에 다들 좋아했던 자장면이 제일 처음 만들어지고 소개된 곳이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으로서, 공화춘이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100년 전 공화춘의 맛이 지금까지 유지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이 원조 자장면을 먹어보았다. 자장면 맛은 다른 중국 음식점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100여년 전에 낯선 음식을 신기해하면서 처음 먹어 보았을 조선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맛있게 먹었다. 이 자장면을 먹기 위해 건물 바깥까지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식사 후에는 삼국지 벽화의 거리를 따라 걸었고 중국에서 기증한 공자 상을 구경하였다. 공자 상이 있는 계단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편이 청나라 조계지였고 왼편이 일본 조계지였다고 한다. 따라서 공자상이 있는 곳이 예전에 청일조계 경계단의 역할을 한 것이다. 공자 상을 지나가니 갑자기 일본 풍의 건물들이 정렬되어 있어서 마치 일본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인천광역시 중구청이 나왔는데, 1883년에 이 자리에 일본 영사관이 세워졌었다고 한다. 조계지는 조선의 행정과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었기에, 일본 영사관 내의 재판소에서 재판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여러 나라의 조계지가 인접한 곳을 걸으며, 조선이 힘이 없어 외국에 조계지를 허가할 수밖에 없었던 불우한 개항의 시기가 생각나 숙연해졌다.

이러한 느낌은 옛 일본 영사관 근처의 일본계 은행이 몰려있던 곳을 보면서 더 진해졌다. 일본제일은행, 일본제18호은행, 일본제58호은행 등이 1890년 경에 영사관 근처에 인천지점을 차례로 개점하였다. 일본 은행들은 인가를 내준 허가 번호를 사용하여 이름에 모두 “제O은행”으로 숫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 일본계 은행들은 일본 상인을 지원하고 조선의 금융계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민족자본이 취약하였던 개항 시기에 이 일본계 은행들이 일본 상업의 전성기를 이끌며 인천에서 월가의 역할을 하였던 시절을 상상해 보았다.

일본제18호 은행지점은 현재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인천 개항이후의 근대적 건축물 모형을 전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많은 역사적인 건물들이 당시 이 지역에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 개항기와 일제 시대를 거치며 지어졌던 건물들이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등의 격전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었다고. 당시 외국에서 인천항 도착 후 경성으로 가기 전에 여행객이 묵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상하이에서 큰 돈을 번 어떤 유럽 사람이 지은 별장 등 사연이 있는 건물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웠다. 이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소설이나 영화가 있으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한말에 세계 정세에 어두워 서양 문물을 배척하다가 외세에 의해서 인천항이 개항 되었다. 나라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수동적으로 끌려갔던 슬픈 역사의 흔적을 이번에 바라보며 비감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개항 시기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옛 제물포의 모습은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이것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박대영(정통) 교수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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