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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냄새비룡논단
   
 
     
 

계절은 냄새를 타고 온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남들이 얘기하는 사계(四季)는 무의미 하다. 아지랑이 냄새를 맡기 전까지 4월은 봄이 아니다. 그 냄새도 맨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어야 한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통과한 아지랑이는 그 냄새를 내지 못한다. 3월부터 시작된다는 봄. 그건 다른 사람의 계절이다. 아직 내가 계절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면.
여름은 비릿하고 매캐한 땀 냄새로 시작된다. 냄새는 내 몸에서 나지 않는다. 끈적임이 뒤엉켜있는 곳. 아스팔트에 떨어진 타인들의 땀 냄새가 여름을 알린다. 그 냄새는 반드시 차들이 만든 바퀴 자국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여름 냄새는 도시적이다.
가을에는 곤충의 날개 냄새를 맡는다. 이 곤충들은 봄의 아지랑이 속, 여름의 아스팔트 위를 날았다. 가을 햇살은 날개 끝 가느다란 섬모(纖毛)에 담긴 지난 계절의 추억을 버무린다. 그렇기에 냄새를 내는 곤충은 적어도 봄에 태어나 가을까지는 살아 줘야 한다. 추억은 날개를 통해 냄새를 토해낸다. 아주 깜깜한 밤이면 더 좋다. 낮의 햇살이 농익은 시점이다.
차가운 날씨. 영하(零下)의 기운이 콧속을 뚫고 들어온다. 이 냄새를 맡는 곳은 주로 차 안이다. 만원(滿員)버스가 적격이다. 막 차에 오른 사람들은 차창 밖의 한기(寒氣)를 어깨에 실었다. 그들의 코트 깃을 통해 그 기운이 내게 전해진다. 코를 통해 들어온 기운은 온 몸을 돌아 정수리에 자리를 잡는다. 겨울이 내게 온 거다.
계절의 냄새는 바람에 섞여 전해진다. 거센 강풍이면 안 된다. 있을 듯 말 듯 한 미풍 정도면 좋다. 아지랑이 바람은 겨우 내 땅 속에 갇혔던 눈이 녹아 생긴다. 곤충은 파르르 날개 짓으로 바람을 일으킨다. 아스팔트 위와 버스 안의 바람은 사람들의 발짓과 몸짓이 스쳐 가면서 만들어진다. 봄과 가을바람에 올라탄 냄새는 자연이 만들고, 여름과 겨울바람은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
사람은 의지(意志)의 동물이다. 스스로 상황을 깨닫고 해석한다. 그렇다고 계절까지 꼭 만들며 살 필요는 없을게다. 내가 이렇게 계절을 인식하는 것도 일부러 만들어 낸 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을 뿐이다. 남들이 말하는 계절에 맞춰, 그들과 똑 같이 더우면 벗고 추우면 껴입는다. 하지만 나름대로 계절을 느끼는 방식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새로운 계절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를.
사실 계절 냄새를 한 동안 맡지 못했었다. 족히 10여 년은 된 것 같다. 킁킁 거려도 봤지만, 계절은 좀처럼 냄새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남들이 말하는 계절이 왔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타인들 사이에, 그들이 말하는 계절들 안에 나를 방치해 뒀다.
지난 해 4월. 내게 계절이 다시 찾아 왔다. 어느 대학 캠퍼스의 나무 벤치 옆에서다. 콘크리트에 가려 얼마 남지 않은 땅의 속살. 산책을 하다 멈춰 선 그 맨 땅위로 아지랑이가 올라왔다. 내 몸에 들어온 그 아지랑이는 계절 냄새를 맡지 못하던 지난 10여 년 동안의 나를 눈앞에 갖다 놓았다. 사회에 나온 뒤 타인의 계절 속에 묻혀, 그들의 세상에 물들었던 내가 보였다. 눈앞의 형상을 털기 시작했다. 거기에 대학 시절부터 담아뒀던 순수와 열정이 나타났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세상에 대한 이해, 그 틀을 준비하던 시기의 행복이었다. 나는 내가 바랐던 나를 추려냈다. 다시 나를 찾은 거다. 계절의 냄새는 그렇게 자극적이다.
오랜만에 냄새를 맡고 얻은 새로운 계절은 나를 이곳 용현동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때 찾은 수많은 내 모습을 캠퍼스에서 매일 만나고 있다. 순수와 열정의 학생들. 앞으로 언제 다시 폭염 속 아스팔트, 곤충의 날개, 만원 버스 안의 찬 기운이 만든 냄새를 만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해 맡았던 그 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다시 4월. 바람이 분다. 봄바람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봄이자, 지난해 시작된 내 봄의 바람이기도 하다. 젊은 청춘. 그대들은 이 봄, 어떤 냄새를 맡고 있는가?

이 건 호 교수  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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