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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희망을 안고 삽니다

  박 형, 어느 덧 2007년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번 데스크 칼럼이 제가 인하대학신문사 편집국장 김상우라는 이름으로 쓰는 마지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은 이전과는 다르게 쓰려고 형을 부릅니다.
  제가 신문사를 처음 들어왔을 때 기억합니까? 처음 박 형을 봤을 때, 형이 그 당시 편집국장 선배를 혼내는 모습을 보곤 저 혼자 얼어붙어 군대도 아직 가지 않은 제가 군대식 말투를 한동안 쓰게 됐지요.
  2005년 9월, 수습기자로 신문사 생활을 시작해 형을 비롯한 선배들과의 만남은 지금까지의 저를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형이 항상 공부를 하지 않으면 기자는 죽은 기자이다라는 말을 하시곤 했던 게 기억납니다. 끊임없이 읽고 쓰라고 하시며 저를 채찍질하기도 하고 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는 어두운 암실로 절 데려가 혼을 내시기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참, 지난 주에 한 신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의 인권유린적인 체포현장을 고발하는 보도가 나왔던 것 보셨나요? 전 그때 그 신문기사를 읽고 너무 놀라 한동안 멍하니 제 방 천정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까지 저와 함께 얘기했던 까지만이라는 외국인 형이 체포됐다는 기사였는 데, 며칠 전 만났던 자리에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게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연대해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전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편집국장을 마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고 형한테 말했지만, 전 그 동안 그들을 친구라는 마음으로 대하기보다 단순히 사진작업이나 신문기사에 피사체 혹은 취재원으로 대했기 때문에 전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박 형, 까지만형은 우리나라에 온 지 16년이 다 됐다고 했는데, 그는 많은 돈을 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외국의 경우 몇 년 이상 체류를 했을 경우 그 나라 영주권을 주지만, 홍익인간, 인본주의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는 이 나라 대한민국은 그러한 제도는커녕 이들을 못 사는 나라의 빈민 혹은 이 나라로 팔려온 노예로 대우했네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뜻을 따르듯 이 나라 대한민국은 국토 안 널리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습니다.
  형이라면 이러한 일들을 아셨을 땐 어떻게 했을 지는 상상이 갑니다. 하지만, 요즘 제 또래 학우들은 그러한 일들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이 없어서 사회과학 동아리들이 문을 닫기 직전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요즘 많은 생각을 합니다. 형이 이전에 제게 말했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진정한 복지가 이뤄지는 그 이상이 과연 이 현실, 이 땅 대한민국에는 언제쯤이면 찾아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요즘 대학이 취업 학원처럼 변모했다지만 아직 그래도 대학에는 형이 신문사 기자를 하시던 당시 좋아하셨던 맑스나 앵겔스, 체를 좋아하는 학형들이 남아있고, 이 먼 타지 대한민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외국 노동자들을 위해 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학우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아직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운 형과 같은 사람이 있을 꺼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오늘도 희망을 안고 삽니다.

김상우 편집국장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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