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일이다. 수업시간에 시를 한편 써놓고 한 학생에게 읽어보라고 했드니 묵묵부답으로 그냥 앉아만 있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시 제목에 들어있는 '북방(北方)'이란 한자를 못 읽어서 그렇게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득 얼마 전 서울대학의 어떤 선생이 학생들이 대학국어' 책을 못 읽는다고 한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나 싶어서 서너 명의 학생을 더 지명해 보았지만 마찬가지 침묵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이런 정도의 한자를 못 읽는 학생들의 수준도 심각한 문제이고, 아무 반응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도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일만 있는 게 아니다. 학생들에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대신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면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남의 글을 그대로 베껴서 제출한다.

그 중 상당수의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남의 글을 다운받아서 제출하거나 한 편의 글을 통째로 베껴서 제출하기 때문에 그래도 몇 권의 책에서 이곳 저곳을 베끼는 학생은 자세가 양호한 편에 속한다.

그리고 베낀 학생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베낀 정도를 고려하며 성적을 부여하면, 다른 학생도 같이 베꼈는데 왜 자기성적이 더 나쁘냐고 따지고 항의하는 학생이 반드시 있다.

이런 학생을 향해 학기말마다 너는 다른 학생보다 훨씬 심하게 베꼈다는 논리를 어쩔 수 없이 제시해야 하는 선생 노릇이 처량하다.

전국랭킹 10위 전후에 있는 우리 인하대학의 학생들 모습이 이렇다면 우리나라 대학생 대부분은 틀림없이 이보다 더 나쁜 모습일 것이다.

생일날 친구들과 카페에서 파티를 못여는 형편에 속이 상하고, 핸드폰의 모델이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구형인 것에 속이 상하면서도 '북방(北方)'이란 한자 정도를 못 읽는 것에는 속이 상하지 않는 의식상태, 자신이 남의 글을 베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반성보다, 남이 베낀 것을 문제삼아 스스로를 정당화하는데 여념이 없는 태도,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한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대학에 입학하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 대학입학 이전에 형성된 지적수준과 의식상태가 대학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무조건 외우는 방식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 나가는 교육으로 시급히 바꾸는 것이다.

동시에 대학은 중고등학교 교육이 바뀌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학생의 지적탐구방식과 윤리적 태도를 수정하고 교정하는 교육에 당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일 것이다.

중고등학교의 교육붕괴가 대학으로 그 파장을 미쳐오는 것을 우리는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홍정선 교수(국문)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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