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 어둠의 혼' 작가

가을이 깊어지면, 문학은 한층 묵직한 울림을 갖는다. 그렇다고 해도 김원일 작가의 ‘어둠의 혼’은 오로지 가을탓으로만 돌려버리기에는 모자라는 데가 있다. 책을 덮은 후에도 어린 갑해의 눈망울을 환영처럼 기억해야 하는 까닭일까. 갑해를 만든 아버지이면서 또 자신이 갑해인, 김원일 작가를 붉고 푸른 가을날 한국현대문학관에서 만났다.
　
“아버지가 드디어 잡혔다는 소문이 읍내 장터마당 주위에 퍼졌다” 6.25 직후 좌익 운동을 하며 쫓겨다니던 갑해의 아버지가 경찰에 잡히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갑해는 아버지와 같이 어울리던 청년들도 하나같이 총살당했으니 아버지도 그렇게 될거라는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게 된다.
　
작품이 작가를 닮아 있다. 김 작가는“이 작품은 가족사에 관한 소설인데 내 경험이 많이 들어갔다. 실제로 아버지도 좌익 운동을 하며 피해다녔고, 아버지가 남몰래 집을 다녀가시는 날이면 어머니는 지서에 끌려가 매를 맞았다”고 털어놓는다.
　
배고픔에 우는 누이와 여동생을 달래다가 어머니를 찾아 나선 갑해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학교에서 동무들에게 배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수수께끼는 아버지를 곯리고 꺼낸 문제였다. 그 때 아버진 “아무도 몰라”가 답이라고 대답한다. 실망한 갑해에게 아버지는 차근히 설명한다. ‘답이란 반드시 맞다, 아니면 틀렸다 두가지 뿐인줄 아느냐. 더러는 모른다는 답이 백점일 때도 있단다. ’라고.
　
이 수수께끼는 작품 전반을 이해하는 열쇠로 작용한다. 열쇠공 김 작가는 “당시 안기부 검열이 매우 엄격했다. 공산주의적인 내용을 쓰면 안기부에서 압력을 넣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감내하고 썼다”며, “중간에 닭과 달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이데올로기를 편견적으로 보지 말고, 이런 문제는(이데올로기 문제) 답이 없는 문제, 모르는 것이 답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안기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우회적으로 이야기한 장치이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의 출세작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유소년 화자를 통해 전쟁과 분단을 객관적으로 서술해 공산주의자들을 인간화시킨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참전 작가들이 반공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작품들을 발표하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사람좋은 웃음을 피우던 김 작가는 “그 때 당시 이데올로기에 대해 사상적으로 모르는 세대였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며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강고한 유신체제 속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해 다른 해답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만으로도 ‘용감한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갑해에게 총살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시키며 깨달음을 던지는 이모부처럼, 작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다른 한쪽으로는 아예 눈을 감아버린 독자들에게 ‘어둠의 혼’을 통해 깨달음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문용주 기자  webmaster@inh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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