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기획] 찬란하게 빛날 당신의 삶을 위해… 새로운 삶의 시작, 임종체험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마지막 구절에서는 마냥 따뜻하고 긍정적인 의미로 봄이 표현되지만은 않는다. 모란이 피듯, 만물이 소생되는 생명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봄은 언젠간 져버릴 모란을 위해 찬란한 이별을 준비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봄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며, 봄을 맞이해 기자는 삶의 소중함을 찾아 임종체험을 하러 떠났다.

 

영정사진을 촬영하며

영정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의 모습

“찰칵!”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된다. 삶의 마지막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담아 간직하는 이 순간이 임종체험의 시작이다. 앞에 보이는 사람들 서른여 명이 오늘 나와 함께 죽을 사람들이다. 아직은 다가올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지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색한 미소가 배어 나온다. 얼굴 보정은 따로 없다면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사진사가 말하자 딱딱한 분위기가 그제야 풀어진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연신 뱉는 사진사를 필두로 플래시가 터질 때까지 약간의 미소를 유지한다. 영정사진을 받아 들자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세상을 떠났음을 알리는 슬픈 장례식에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조문객을 맞이한다는 상상이 그저 웃기기만 하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은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산 것처럼 남고 싶기에, 꽤 마음에 드는 영정사진이다.

간단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강의로 듣고 체험장으로 향한다. 임종체험장이 진행되는 방은 암막 커튼을 걷고 들어가야 한다. 이 커튼 너머가 바로 죽음이 시작되는 공간이다. 희미한 촛불 아래 들려오는 청아한 피리 소리가 경건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개를 들고 본 정면에는 오동나무로 된 수십 개의 관들과 베로 짠 수의가 나란히 놓여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기자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세상과 만나는 마지막 순간

죽음 10분 전, 세상에 작별을 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기자 앞에 유언서가 주어졌다. 이 시간만큼은 가장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전할 수 있다. ‘죽기 직전에야 글로 사랑한다는 말을 남길 수 있어서 미안해요.’ 인생을 돌아보니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가족이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기자의 유서에 차곡차곡 적혀지는 세 글자에 뜨거운 진심은 눈물로 터져 나온다. 우리 삶은 누군가와 보낸 추억, 그 안에서 사랑과 응원이 함께 있었기에 계속됐다. 돌아보면 삶의 소중함, 행복한 순간들이 참 가까운 곳에 있었음을 느낀다.

유서 작성이 마무리될 때쯤, 강사가 한 마디를 던졌다. “여러분이 쓴 유서 내용을 한번 돌아보시겠어요?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 더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 제가 여러분께 유서를 작성하라고 한 이유입니다. 오늘 유서에 적은 후회와 아쉬움은,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하셔야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20년의 짧은 인생에, A4용지 한 장이 모자랄 정도로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눈물을 머금고 기자를 둘러싼 세상에 말을 쏟아내면,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본 세상

참가자들이 모두 관에 들어가 있다.

드디어 입관이 시작됐다. 약 5~10분 정도 관에 들어가 죽음과 가까워져 보는 시간임과 동시에 삶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삶을 다짐할 시간이다. 강사의 진행에 따라 스스로 관문을 열고 들어갈 준비를 했다. 관 입구를 열자 마주했던 좁고 기다란 공간은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크기다. 등 뒤로 닿는 딱딱하고 차가운 나무 바닥, 팔다리가 저절로 가지런해지는 이 목제 상자 안에서 보는 천장이, 죽음으로 향하기 전 기자 눈 속에 담기는 마지막 풍경이다.

두꺼운 나무 뚜껑이 닫히고 관 너머로 연신 덜컥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곧이어 강사가 지나다니며 문을 닫고 못을 박는 시늉까지 하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죽었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기자 본인만 있는 관 속에서는 장사를 치르는 종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온다. 동시에 답답함과 두려움이 기자에게 밀려든다. 지금 느껴지는 답답함과 무서움은 좁은 공간에 갇혀 느끼는 단순한 불편함일까, 아니면 살아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고독함과의 독대에 대한 허무함일까. 체험이 끝나면 기자는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만약 체험이 아닌 진짜 죽음이었다면… 삶이 끝나는 지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는 그 ‘낯섦’을 짧은 순간이나마 조금 이해해 본다.

시간이 지나니 몸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해졌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지나온 날들에 대한 행복한 기억과 후회, 적지 못한 유서 내용도, 아직 이뤄내지 못한 목표도 떠오른다. 그러나 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다. 살아가면서 느낀 아쉬움은 ‘그땐 그랬지’라는 한마디 말과 한 줌의 눈물로 정리된다는 것을 안다.

“잠시 후, 여러분은 새로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과거에 아프고 힘든 기억들은 관 속에 두고 행복할 사람으로 태어나세요.” 적막을 깨고 강사의 말이 들려온다. 이제는 관 속에서 빌었던 기회들과 소망들을 가지고 힘차게 관문을 열 차례다. 이 관문을 열고 나가면 새로운 기회가 두 손에 쥐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정된 죽음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삶

“딸 아이도 사춘기를, 저도 갱년기를 겪어서 갈등으로 힘들었지만, 오늘 임종 체험을 통해 삶에 있어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상담 등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A씨 가족의 일상에는 갈등이 단단히 얽혀 있었다. 그러나 오늘 가족과 함께하는 임종체험을 통해 그들은 갈등을 풀 수 있는 자세를 배우게 됐다. “나를 내려놓고 죽음을 마주해보니 그동안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임종체험이 진행되는 백석웰다잉힐링센터의 정용문 센터장도 임종체험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죽음을 인지하고 느꼈던 걸 현재의 삶에 적용하는 것. 그게 진정한 웰다잉(well-dying)이죠.” 더하여 공동체를 살아가면서 각자가 마주하고 있는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임종체험의 또다른 목표라고 밝혔다. “센터를 운영하면서 도박 중독에 빠진 남편을 부인이 데리고 와서 눈물 흘리면서 체험하셨던 모습이 기억나요. 삶이 피폐해져서 마지막 수단으로 여기를 찾아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유효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체험하는 그 순간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약속을 하고 가셨어요. 그 약속만으로도 서로에게 많은 위로가 되고 삶의 단단한 증표가 됐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아갑니다.” 담담하게 전하는 마지막 한 마디에는 유한한 삶의 소중한 가치와,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자는 임종체험의 숨은 의미가 은은하게 퍼지는 듯했다.

다시 삶을 돌아보자. 기자는 임종체험을 마치고, 우리 삶에는 행복한 봄날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때로는 좌절하고,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 속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건 결국 아름다운 삶의 필수 전제다. 좌절과 극복이 공존하는 우리의 삶이야말로 찬란하고 슬픈 봄이다. 결국 지나고 보면 과거는 지금 당신을 완성할 수 있었던 발판이었으며, 당신의 미래를 값지게 만들 힘 또한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그 힘을 믿고 살아가며 후회 없이 끝을 맞이하는 게 웰다잉이 아니겠는가. 삶을 열심히 버텨 나가고 있는 당신에게 한 마디를 던지며 기사를 마치고 싶다. “앞으로도 찬란하고 슬프게 빛날 모든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20@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서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