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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상자 ‘베이비박스’, 그 속에 담긴 2,041가지 사연들
주사랑공동체 교회 베이비박스 내부 사진

새해가 밝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1월 27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 베이비박스엔 올해 들어 여덟 번째 벨이 울렸다. 고요하던 교회 건물에 클래식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려 퍼지자, 순식간에 직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보육사는 베이비박스 속 아기를, 상담사는 아기를 놓고 간 부모를 전담한다. 10여 분 뒤, 보육사가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추운 날씨 탓인지 그의 몸엔 찬 기운이 가시질 않았지만, 무릎부터 꿇고 한참을 기도했다. “아이가 무사히 이곳에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포대기를 열자 말 그대로 ‘갓난’아기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보육사는 아기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체온과 체중을 잰 뒤 아기방에 아기를 안고 들어갔다.

그동안 상담사는 황급히 떠나는 부모에게 달려가 상담을 권유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5분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를 설득해 상담 의자에 앉히는 것이 목표다. “제발 우리랑 같이 상담해요.”, “그게 힘들면 들어와서 아기 이름이라도 알려주고 가세요.” 이 순간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이뤄지기에 직원도, 베테랑 봉사자도 쉽사리 끼어들 수 없다. 보는 눈이 많아지면 신원 노출에 민감한 부모가 상담을 완강히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다 부모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함께 ‘베이비룸(상담실)’으로 향한다.

베이비박스를 거쳐 간 2,041명의 아이들

베이비박스는 2009년 이종락 목사가 교회 앞에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해 상자 하나를 설치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며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개정된 조항 중 눈여겨봐야 할 점은 ‘입양 전 출생신고의 의무화’다. 이에 따라 아동을 출산한 친생부모는 입양을 보내기 위해 무조건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자 실명 신고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입양기관이나 시설을 기피하고 자신의 존재를 비밀에 부칠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찾게 됐다. 그렇게 2013년부터는 매일같이 건물에 ‘엘리제를 위하여’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제 2012년 79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놓였지만 2013년 252명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2022년까지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를 거쳐 간 아이들은 2,041명. 그야말로 우후죽순 아이들이 작은 상자에 맡겨진 셈이다.

가정 회복을 결심하는 순간의 시간

흔히 베이비박스를 떠올리면 부모가 아기를 상자에 놓고 가는 것에 그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 방문한 부모는 필수적으로 ‘상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며 상담 의자에 부모를 앉히는 순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1명의 상담사로 시작해 현재는 4명까지 늘어나 전체 직원 수(9명)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2011년 23%에 불과하던 상담률은 2022년 98%까지 올랐다. 덩달아 오른 것은 원가정 회복률이었다. 2011년 베이비박스를 찾은 아동 중 8.5%만이 원가정으로 복귀했으나, 2022년에는 30.1%의 아동이 원래의 부모 품으로 돌아갔다.

일단 상담이 시작되면,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놓고 갈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이유가 쏟아져 나온다. 이때 상담은 부모의 상황이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끊임없이 가정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음을 설득한다. 주사랑공동체 교회 베이비박스에서 4년간 근무한 이혜석 전임상담사는 “단 한 아이라도 상담을 통해 가정을 회복할 수 있다면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상담이 필요하다”며 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얼마 전 베이비박스를 찾은 A 씨도 상담 후 아기의 출생신고를 결심했다. 불법 체류자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애아는 홀로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 다가왔다. 병명은 선천적 폐동맥 폐쇄증. 주기적인 병원 검사가 필요하지만 아내가 불법 체류자인 탓에 아기 밑으로 주민등록번호조차 나오지 않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떠오른 게 ‘베이비박스’였다.  상담이 끝나고 베이비박스는 의료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병원비를 지원했다. 이 온기를 바탕으로 부부는 출생신고를 결심했다. 이렇게 베이비박스는 위기가정의 마지막 동아줄이 돼주었다.

그렇다고 상담을 통해 모든 아동이 출생신고가 되는 건 아니다. 부모가 끝까지 출생신고를 거절하면 남은 아동은 ‘미등록 아동’이 된다. 2022년 기준 상담을 통해 출생신고가 된 아동은 전체 35%. 나머지 65%는 태어났지만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 아이로 남았다. 이들은 베이비박스에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정도 머문 후 구청에 인계돼 거처를 옮긴다.

이들을 ‘지켜진’ 아이라고 할 수 있나

여러 언론에서 베이비박스의 아이들을 ‘버려진’ 아이가 아닌 ‘지켜진’ 아이라고 보도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지켜진 아이들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다. 일부 아이들이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동안, 똑같이 베이비박스에 왔으나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시설로 가야 했던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헤이그국제아동보호협약(이하 헤이그 협약)은 ‘행복하고, 애정 있고, 이해하는’ 전제하에 원가정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며 아동보호 선진국들은 이 원칙을 따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따라 아동에 대한 보호 원칙은 원가정→입양→위탁/그룹홈→시설 순으로 정책의 기조를 삼고 있다. 쉽게 말해 원가정 회복이 불가능한 아동의 경우 ‘입양’같이 원가정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본 현실은 달랐다. 끝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구청으로 인계된 아이들은 병원검진을 거쳐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 임시 보호된다. 임시 보호되는 동안 각 지자체장의 재량껏 호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지자체장의 성을 따라 성·본창설을 해줄 수 있다. 성·본창설이 이뤄진 아동은 출생신고가 가능해 입양을 갈 자격이 부여된다. 그러나 이는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가 속한 관악구청의 경우 성·본창설 없이 아이들을 바로 시설로 보낸다. 이유는 인력 부족이다. 이에 서울시아동복지센터 관계자는 “일시보호소의 수용 인원이 30명뿐이고 영유아 전담 보호 직원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렇게 보육원으로 보내진 아이들은 태어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보육원장의 성을 따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선 입양 후 시설’을 외치던 정책의 기조와는 반대로, 시설에 들어가고 난 뒤 입양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시설이 마냥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정책 기조상 장기보호시설은 가장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과연 아이들이 ‘행복하고, 애정 있고, 이해하는’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충분한 숙고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창고 한 켠, 미혼부모들에게 지원할 육아용품이 쌓여있다.

미인가 시설로 정부 지원은 ‘0원’

현행법상 베이비박스는 미인가 시설로 일반 사회복지시설과 달리 정부 지원금은 전혀 없다. 오롯이 후원자들의 기부금과 교회 재단 법인의 기금으로 운영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 베이비박스에선 오후 2시가 돼서야 뒤늦은 점심식사가 시작된다. 20분의 짧은 점심시간이 끝난 뒤엔 소화할 틈도 없이 곧 배송할 후원 물품을 포장한다. 기자의 질문에 응하는 도중에도 손은 후원 물품 포장을 위해 바쁘다. 베이비박스 황민숙 센터장은 “오늘 정도면 정말 한가한 날”이라며 “평소에는 더 전쟁 같은 스케줄을 소화한다”고 전했다.

이곳 보육사는 교대 근무가 아닌 하루를 통으로 전담해 아기를 돌본다. 언제 어떻게 베이비박스의 문이 열릴지 모르기에, 늘 긴장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고된 업무에도 불구하고 연봉은 일반 사회복지시설의 60% 정도에 불과하다. 황 센터장은 “돈 생각하면 이곳에서 근무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사명감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 덧붙였다.

그나마 매스컴에 자주 오른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의 경우는 상황이 괜찮은 편이다. 경기 군포시에 위치한 새가나안교회는 아기를 돌볼 고정 인력이 없는 탓에, 신도들이 자원해 24시간 돌아가며 숙직한다. 새가나안교회에서 베이비박스를 담당하는 김은자 권사는 “밤새 아기를 돌봐줄 인력이 없으면 외부에서 급하게 사람을 쓰기도 하는데, 그 사례비도 교회에서 지급한다”며 재정적인 고충을 털어놨다.

비수도권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부산 사상구의 사회복지법인은 3개월의 짧은 시범 운행을 끝으로 운영을 중지했다. 사상구청이 아동 유기 방조 등의 이유로 강경한 입장을 취해 결국 베이비박스 설치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해당 법인은 아기용품과 침대를 구비하여 실제로 아기를 돌보기도 했으나 사상구청 관계자의 신고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기자가 사회복지법인을 방문한 1월 24일, 이곳에서 베이비박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법인 관계자는 “부산시로부터 현행법에 저촉돼 운영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현재는 그룹홈(공동생활가정)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비박스 아동이 머물게 된 시설에선

그렇게 베이비박스를 떠난 아이들은 각종 아동양육시설로 뿔뿔이 흩어진다. 서울에서 운영되고 있는 34개 시설 모두 베이비박스 아동을 돌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베이비박스 아동들은 시설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한 보육원을 방문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설에서 생활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분리되는 걸 힘들어해요.” 이곳에서 베이비박스 아이들은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존재’였다. 상대적으로 일찍부터 단체 생활을 경험하면서 시설에 있던 기존 아동들보다 불안과 애정결핍이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보육사가 베이비박스 출신의 모든 아이에게 일일이 사랑을 표현하기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곳에서는 신생아부터 만 1세까지의 아동 11명을 3명의 보육사가, 만 2세부터 3세까지의 베이비박스 아동 12명을 2명의 보육사가 돌보고 있었다. 보육원 내 사회복지사 B 씨는 “연령대가 비슷한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한 번에 들어와서 돌보는 것이 힘들다” 며 “예전에는 막내가 있고, 중간 연령대의 아이가 있고 큰 아이가 있었다면 지금은 막내가 여러 명”이라며 일손 부족을 토로했다.

한편 아동에 대한 기초 정보가 부족해 겪는 어려움도 있었다.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아동의 경우 기초적 정보인 가족력과 유전력의 파악이 불가능해 아동의 병이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발병 후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서 고액의 병원비가 발생하고 이는 온전히 아동양육시설이 책임지게 되는 구조다.

베이비박스를 떠난 대부분의 아이가 시설에 맡겨짐에도, 시설 내 베이비박스 아동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은 미흡하다. 특히 베이비박스 아이들은 모두 서울에 위치한 아동복지시설로 인가되기에 이곳 보육시설은 말 그대로 포화상태다. B 씨는 “서울시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국가가 개입을 해 지방 시설에도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분배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사회 구조적 문제의 집합체, 베이비박스

‘베이비박스가 영아유기를 조장하기에 없어져야 한다.’,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있어야 한다.’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이후 존치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은 치열하게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일차원적인 담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부모 가정(68.9%) △배우자의 외도(10.4%) △장애아 출산(6.6%) △성폭행으로 인한 원치 않은 임신 등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 각자의 사유들은 우리 사회에서 보고 싶지 않은, 배척하는 모든 것을 총망라하고 있다. 비혼 한부모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과 지원의 부재, 성범죄에 대한 미흡한 안전망 등 사회에서 내몰린 사람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베이비박스를 찾는 것이다. 이 작은 상자 속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담겨있다.

실제 이혜석 전임상담사는 “부모가 아동을 두고 가는 행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 중 출신이 서울인 아동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전국 곳곳, 심지어 배를 타고 18시간 제주도에서부터 아기를 맡기러 온 부모도 있었다. 이미 한부모 가정을 위한 국가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박스로 먼 걸음을 한 것은 여전히 사회에서 그들이 온전히 포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리지 않는 세상

주사랑공동체 측에서도 베이비박스가 사회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로선 극한까지 몰린 사람들이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곳은 베이비박스뿐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핍박받는 부모가 베이비박스에 더 많은 발걸음을 할수록, 더 많은 아이가 이곳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결국 베이비박스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은 ‘베이비박스가 사라지는 것’이다. 베이비박스가 더는 필요 없어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끊는 것. 이를 위해 우리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베이비박스가 돼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2,041명의 아이들과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2,041가지 사연. 상자 밖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슬픔에 주목할 때 비로소 ‘엘리제를 위하여’는 울리지 않을 것이다.

박소은 기자  1220323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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