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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논단] 죽고 싶지는 않지만 자해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 지 은 교육대학원 교수
  • 승인 2023.04.3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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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은 교육대학원 교수

상담 장면에서 뾰족한 도구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일명 ‘자해’ 행위를 지속해 온 내담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자해에는 날카로운 물건으로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뿐 아니라 과도하게 술이나 약물을 복용하는 행위, 먹은 음식을 모두 토해내는 행위도 포함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상처/부담을 주는 행위가 바로 ‘자해’인 것이다.  

오랜 기간 자해를 해왔던 내담자에게 우리는 묻는다. “죽고 싶은 마음에 자해를 했던 건가요?”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내담자들은 “죽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계속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이와 같은 사례처럼, 죽고 싶은 의도는 없는 자해행위 일명 ‘비자살성 자해(Non-Suicidal Self-Injury: NSSI)’를 행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죽고 싶지 않다면서 왜 소중한 당신의 몸에 깊은 상처를 주느냐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해하는 행위를 해왔던 걸까. 

비자살성 자해를 설명하는 다양한 관점들이 있지만, 상담 현장에서 내가 많이 발견했던 이유 중 하나는 ‘주도성 상실에 대한 절망과 회복에 대한 왜곡된 갈망’이었다. 장기간 우울과 불안을 경험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나는 무능력하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고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없고 내 미래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한다. 이들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과 내 삶에 대한 주인이 되지 못했던 일명 ‘주도성 상실’의 경험과 감정이 많이 관찰된다.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어도 속상한데 자기 자신과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건 얼마나 슬프고 절망적인 일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비자살성 자해에 이끌리는 이들은 오로지 자신만이 온전히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의 몸에 ‘왜곡된 주도성’을 발휘한다. 몸에 손상을 내어 그 통증과 처치에 집중하는 동안 가슴에 일어난 불안과 우울이 사라진다고 착각한다. 내 몸에 생긴 상처를 보면서 부족한 내가 응당 받았어야 하는 벌이었다고 후련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으로 불편해지고 이전보다 더욱 강한 자극으로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한다. 

자해를 멈추게 하는 출발점은 이들의 ‘절망감’에 대한 깊은 공감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개별적이고 다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저 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었다며 엄중하게 꾸짖는 이야기를 듣고, 자해행위를 하던 이가 멈출 수 있을까. 아마도 ‘역시 나는 나쁜 행동을 하는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더욱 미워하고 이러한 우울과 불안한 감정을 잊기 위해 자해를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과 자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불편하니 아마 더욱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계속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가 아니라 ‘너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해를 행하는 당신의 깊은 슬픔과 좌절, 절망감을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도 당신의 감정은 충분히 그럴만했을 것으로 믿는다는 인정(타당화)은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에 큰 위로가 된다. 이러한 깊은 애도와 위로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당사자는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자신을 잘 돌보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고 자해를 멈추는 것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의 일부 중에서 

지 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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