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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장애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 놓인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함께 살아가는 도시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 비장애인과 똑같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책을 읽고 학교에 다니면서 일상의 행복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과연 굳건한 장벽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을까.  

이번 기획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존재하는 장벽이 얼마나 굳건한지 헤아리기 위해 기자가 직접 눈을 가리고 하루를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손으로 읽어 본 세상

가장 먼저 그들의 언어부터 배우기로 했다. 공공장소에 붙어있는 간단한 점자부터 점자라벨도서 해독을 목표로 안대를 쓰고 점자를 익혀 나갔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는 6점식 점자, 훈맹정음은 한 칸에 가로 2줄*세로 3줄로 구성된다. 왼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1점, 2점, 3점, 오른쪽도 마찬가지로 윗줄부터 4점, 5점, 6점으로 정해져 있는 번호에 특정 자음과 모음에 찍힌 점형을 외우는 게 첫 단계다. 다음으로 자음, 모음, 종성을 풀어 쓰는 점자의 원리에 따라 어떤 위치에 점이 튀어나왔는지를 암기하면 글을 읽어 나갈 수 있다. 겉보기엔 쉬운 점자 해독에 자신감을 느끼고 점자 일람표를 읽어주는 파일을 재생해 암기를 시작했다.

“ㄱ은 4점… ㄴ은 1, 4점… ㄷ은…다시 ㄱ은…” 시야가 차단됐기 때문에 암기할 정보를 시각화할 수 없다. 시각이 막혔으니 다른 감각인 ‘청각’에 의존해 점자를 배워본다. 점자 음성파일을 재생하고 글자를 나타내는 점의 위치를 입 밖으로 뱉는다. 평소 눈을 통한 암기에 익숙해져 있던지라 방금 들은 정보를 줄줄이 읊었음에도 점의 위치가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다시 제자리, 또 말하지 못하면 영상을 돌려 소리를 듣는다. 확실한 암기를 위해서는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말해보는 수밖에… 고작 감각 하나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인데 암기에 쏟아붓는 시간과 답답한 마음은 배로 커져간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암기였지만, 예상보다 많은 암기량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장애인이 쓰는 ‘묵자‘와는 달리, 자음은 초성에 쓰이는 글자와 받침으로 쓰이는 글자가 다르다. 묵자는 한 가지 형태의 자음을 사용하지만, 점자는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 자음 형태를 모두 알아야 했다. 점자 일람표를 암기했음에도 예외 규칙들과 약자는 점자 해독에 어려움을 더했다.

막무가내로 주입하다시피 암기한 점의 위치를 내뱉던 도중 의아함이 생겼다. 숫자 3과 알파벳 C, 초성 ㄴ의 점의 위치가 똑같은 것이었다. 머릿속 물음표가 그칠세라 숫자와 알파벳임을 알려주는 수표와 로마자표가 점의 형태로 제시됐다. 6개의 점을 가지고 숫자, 알파벳, 한글을 모두 표현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앞에 어떤 표가 제시되었는지에 따라 글자의 종류를 따로 해독해야 했다.

그동안 공부한 점자를 이용해 점자라벨도서를 읽어 보기로 한다. 아쉽게도 본교 정석학술정보관에는 점자로 된 도서가 없어 근처 어린이 도서관에서 점자 동화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점과 점 사이의 간격이 좁고 눈이 안 보이니 지금 어떤 위치를 만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한참을 헤맨 끝에 세 문장이 적힌 한 페이지를 40분에 걸쳐 읽을 수 있었다.

점자 일람표를 열심히 암기했지만, 손끝으로 점의 위치와 양각을 파악하고 점자를 해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로 6㎜, 가로 4㎜의 작은 세상 안에는 촘촘한 간격으로 풀어진 점들이 나란히 모여 있었고, 모든 감각을 한 곳으로 집중해 글자를 하나씩 맞춰가야만 했다. 누군가는 끈기와 인내를 바탕으로 거대한 세상과 소통해야 했음을 이해하는 순간이다.

점자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손으로 느꼈다면, 이제는 세상을 걸어볼 차례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겠다고 호기롭게 안대를 쓴 뒤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나 익숙했던 풍경에 암흑이 깔리니 두려움이 앞선다. 자주 드나드는 신문사조차도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기분이 느껴진다.

학생회관에 있는 신문사에서 출발해 처음 도착한 곳은 여자 화장실이다. 뚜벅뚜벅보다는 엉금엉금에 가까운 걸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쾅-! ‘분명히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왜 벽에 부딪혔지?’ 앞이 보이지 않으니 방향감각이 없어 직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왼쪽으로 이동하기 일쑤였다. 겨우 방향을 찾아 화장실 앞까지 도착했으나, 점자가 구체적으로 화장실 입구 어떤 위치에 표시돼 있는지 몰라 남자화장실에 잘못 들어갈 뻔했다. 문 옆 기둥에서 겨우 점자를 찾을 순 있었지만, 손끝 감각에만 의지해야 하므로 해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는 학교 정문에서 장애학생지원팀 사무실까지 이동해보기로 한다. 눈을 가리며 걷다 보니 정문 횡단보도 신호등에 음성안내 인식기가 설치돼 있지 않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결국 동료 기자가 귀띔해주고 나서야, 초록불이 켜졌음을 겨우 확인했다. 그러나 방향감각도 없을뿐더러 횡단보도엔 보도블록 등 어떠한 장치도 없어 횡단보도를 제대로 건널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지신호를 받고 멈춰 있는 차 쪽으로 이동하며 차와 부딪혀 사고가 날 뻔했다.

또한 눈을 가려서 그런지 청각이 굉장히 예민해졌다. 누군가 오는 발소리나 스쿠터 소리가 들릴 때면 걸음과 지팡이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디서 뭐가 오는지 모르기 때문에, 알아서 비켜주기를 바라야 했다. 장애물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휘두르자 팔 안쪽 근육이 저려와 나중에는 팔을 바꿔가며 지팡이를 휘두르기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아픈 팔을 부여잡고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하이데거 숲과 울림돌 사이에서는 보도블럭이 끊겨 있음을 알아냈다. 어디로 갈지 몰라 앞으로 가니 덤불에 부딪혔고, 부딪힌 덤불 왼쪽으로 이동하니 차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 다니던 길이라 ‘여기가 차량과 사람이 같이 다니는 본관 사이구나’ 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차가 계속 다니고, 주차된 차도 많아 차가 다니지 않는 구석으로조차 이동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부축을 받으며 학생회관까지 향했다.

학생회관 3층에 있는 장애학생지원실을 찾기 위해 이번에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이제 배운 수표 점자를 잘 해독할 수 있을지를 드디어 확인해볼 차례다. 긴장되면서도 감각을 곤두세우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울퉁불퉁한 점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아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점이 아닌 엘리베이터 보호필름만이 기자의 손을 맞이했던 것이다. 맨들맨들한 투명 필름 하나를 두고 그 너머 숫자를 느껴본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게 필름 껍데기인지, 점자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특히 3층(1, 4)과 4층(1, 4, 5)의 차이는 점 하나이기 때문에 보호필름의 존재만으로 정상적인 해독이 불가했다. 결국 3층으로 추정되는 것을 겨우 눌렀더니, “4층입니다-.”라는 음성만 야속하게 흘러나온다. 얼른 아래 있는 3층 버튼을 다시 눌렀다. 짧은 순간이지만 고작 맨들맨들한 막 하나가 기자와 숫자를 가로막는 커다랗고 단단한 벽같이 느껴진다.

힘든 여정 끝에 안대를 벗었다. 감았던 눈을 스르륵 뜬다. 지팡이를 든 손과 팔은 여전히 아프고 후들후들하다. 평소에는 불과 10분 만에 오던 거리였지만 그보다 40분이나 초과하는, 50분의 기록을 눈으로 확인한다.

 

간격을 메울 수 있는 시각

‘평소라면, 앞이 보였다면…’ 눈을 감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몇 번이고 되뇌었던 말이다. 보였던 것들이 보이지 않았을 때 오는 막막함과 답답함. 기자에게는 단기간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복됐을 수많은 도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역시 장벽을 허물기 위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건 벽 너머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이해였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당장 눈앞에 장벽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눈 앞에 ‘보이는’ 세상에만 갇혀 장벽 너머의 누군가의 소리를 외면하지는 않았을까. 차근차근 준비가 필요한 사회다. 그들의 존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작지만 거대한 움직임에서부터, 공존하는 세상으로의 도약을 위해.

기자가 눈을 가리고 걸어다니고 있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20@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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