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기획] 농촌에 불어오는 젊은 바람

청년 인구 부족은 오랜 세월 동안 농촌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제기돼 왔다. 수도권 중심의 경제발전으로 청년 인구 유출이 심한 데 이어 사회 전반적인 출생률 감소로 국내 농가는 빠르게 늙어갔기 때문이다. 1983년 5.3%에 불과하던 65세 이상 농촌 인구는 2018년에 44.7%로 크게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가파른 고령화가 ‘농촌 소멸’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그러나 ‘청년 가뭄’을 겪는 농촌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최근 도시를 떠나 귀농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추세기 때문이다. 2019년 1,206가구던 청년 귀농 인구는 2020년 1,362가구, 2021년 1,522가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바 있다.

그들은 왜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하고 있을까?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농촌을 방문해 농업 분야에서 활약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농촌에서 활약하는 청년들

쨍한 LED 조명이 복잡한 기계장치 위에서 활짝 핀 딸기를 비추고, 한편에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딸기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팜’인 이곳은 청년농부 안해성 씨의 농장이다.

농장을 둘러보는 안해성 씨

경기도 포천시에서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안해성 씨는 올해로 4년 차 청년농부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질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국내에서 손꼽는 건설회사에 입사해 최고 대우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회사 생활을 한다. 하지만 입사 5년 차가 되던 해, 그는 돌연 사직서를 내고 농부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다. 점점 주어진 일만을 처리하는 자기 모습에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부럽지 않은 회사생활이었고 실제로 재밌었어요. 다만 지금 하는 일을 평생 만족스럽게 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선뜻 그렇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안 씨는 누군가의 회사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업을 해보자 다짐했고 평소 유망하다고 생각한 농업 분야에 뛰어들게 된다.

안 씨는 대학에서 배운 지질학적 지식을 농업에 적극 활용해 왔다. 농지 일대의 지질적 특성을 고려해 딸기 농사에 적합하도록 지하수 관정을 개발했고, 산업 현장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농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자체 기술을 고안하기도 했다. 건설 회사에 다니면서 배운 건축학적 지식도 스마트팜 설비를 지을 당시 단가를 절감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스마트 농업이야말로 전자공학, 기계공학, 건축공학, 토목공학, 컴퓨터공학 등 모든 공학적 지식이 집약된 융복합 산업이라고 전했다.

충청남도 천안시에도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청년농업인이 있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농업회사법인을 창업한 김기태 씨가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와 함께 배 농사를 짓는 그는 생산뿐만 아니라 ‘즙’ 형태로 가공하는 사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경영학적 지식을 활용해 타겟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한다. 처음에는 목을 많이 사용하는 강사들을 대상으로 목에 좋은 도라지 배즙을 판매하다가 현재는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호박즙, 가려움증에 효과가 있다는 사과탱자즙 등 특정 효능을 원하는 고객을 타게팅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농업의 무게

농사를 짓기 위해선 농지 매입부터 하우스 설치 등 초기 투자 비용이 상당히 소요된다. 아무리 정부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빚을 지지 않고 농장을 건설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농장을 짓는다고 해서 바로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다. 농작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청년창업농이 전체 농가 평균 정도의 수익을 얻는 데는 약 4년가량이 소요된다.

교육 인프라 부족도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농촌 지역 특성상 생활 인프라는 대부분 시내에 있다. 그러나 마을과 시내를 연결하는 대중교통편은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기자가 방문한 평창 지준구 씨 농가의 경우 진부버스터미널에서 농장 인근까지 잇는 버스가 하루에 세 대밖에 없다. 그마저도 버스 정류장에서 농장까지 거리가 20분가량 걸린다. 교육 인프라 부족은 더 큰 문제다. 지준구 씨는 “큰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한 반에 학생이 7명뿐”이라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을 이끄는 경험도 했으면 좋겠지만 점점 농촌 인구가 줄고 있어 걱정”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많다. 오랜 세월 동안 나름의 작은 사회를 형성해온 원주민과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귀농인은 가치관에서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에서도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처음 농지를 매입한 후 농장과 농장 사이 경계를 확정 짓는 일부터 지하수 관정 개발 문제까지 민감한 사안을 놓고 협상해야 한다. 안해성 씨도 처음 농지 경계측량을 할 때 이웃 농민들과 마찰을 겪었다고 밝혔다. 법적으로는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법정 다툼으로 번질 경우 향후 정착 과정에서 더 큰 갈등이 생길 것이 뻔했기에 안 씨는 주민에게 그 땅을 양보해야만 했다.

청년들이 말하는 귀농의 장점과 비전

파프리카 새싹을 돌보는 지준구 씨

이토록 어려움이 많은 농업이지만, 그럼에도 농촌을 향한 청년들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농업이 그 어려움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풍부한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농업의 가장 큰 장점으로 들인 노력이 그대로 성과로 드러난다는 점을 꼽았다. 평창에서 파프리카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지준구 씨는 “꼼꼼하게 안 봐주면 파프리카가 열매도 안 맺고 색도 이상해지는 등 확실하게 드러난다”며 “내가 노력을 들인 만큼의 보답을 얻는 것”이 농업의 매력이라고 밝혔다. 안해성 씨도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격언을 소개하며 “농업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업종”이라고 전했다. 당장의 노력이 눈앞에 가시적인 성과로 표현되기에 그만큼 일을 하는 보람이 있다고 청년농들은 말했다.

농촌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지 씨는 “도시에서는 내가 여유롭게 살고 싶어도 주변 환경이 여유롭지 못하기에 휩쓸리기 쉽다”면서 “주변도 다들 여유롭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여유를 즐길 수 있다”고 전했다.

많은 청년들이 농업으로 뛰어드는 이유에는 농업의 높은 발전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준구 씨는 “식량 수요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고 스마트팜을 통해 생산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준다면 수익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농업의 비전을 보고 귀농하는 청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21년 귀농·귀촌 실태조사에서 ‘농업의 비전과 발전 가능성’을 귀농 이유로 꼽은 청년은 26.4%로 가업승계보다 고작 0.2%P 많은 수준이었지만 2022년에는 33.4%로 가업승계보다 무려 9.4%P 높은 수치를 보였다.

정부 지원과 앞으로의 전망

점차 늘어나는 청년농업인의 수에 맞게 정부도 관련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7년까지 청년농 3만 명 육성, 2040년 청년농 비중 10%를 목표로 하는 ‘제1차(2023~2027년) 후계 청년농 육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존 2000명이었던 영농정착지원대상자는 2배 가량 증가하고 지원금액도 10% 늘어난다. 첫 농지 취득을 위한 융자 지원 규모도 확대된다. 이를 통해 농창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초기 투자 자금 마련을 정부 지원을 통해 극복할 수 있게 됐다.

농부를 꿈꾸는 대학생이라면 농어촌희망재단에서 주관하는 청년창업농육성장학생에 지원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청년창업농육성장학금은 졸업 후 농업 분야에 일정 기간 이상 종사하겠다는 약정을 한 대학생에게 등록금 전액과 학업 장려금 한 학기 250만 원을 지원하는 장학금이다. 3학년 이상(3학년 진학예정자 포함)이면서 만 40세 이하인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청년창업농육성장학생이 될 수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 농업은 21세기 최첨단 기술에 어울리지 않는 예스러운 산업으로 평가절하돼 왔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농업은 기술혁신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취업난이 극심해진 요즘, 많은 청년들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동시에 책임질 농업 분야 창업에 뛰어드는 중이다. 농업은 더 이상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산업이 아니라 우리를 진정으로 먹여 살릴 수 있는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기원 기자  qnal44@inha.edu

<저작권자 © 인하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기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