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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칠흑 같은 바닷속 빛나는 별이 돼 주길, 해성보육원
가을 소풍에 나온 수녀와 아이들

가족(家族). 이 단어를 본 사람들은 흔히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보편적인 형태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여기 조금은 ‘특별한 가족’이 있다. 성(姓)도 고향도 다른, 호칭은 ‘엄마’보단 ‘이모’가 편한 142명의 대가족. 본 취재는 해성보육원 무지개 반의 일곱 천사 별이, 초원이, 지한이, 주은이, 해준이, 가람이, 혜은이 그리고 4명의 보육교사와 함께한 5개월의 기록이다.

* 아동인권을 고려해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육기관

각종 음식점이 즐비한 후문가를 걷다 보면 조금은 뜬금없는 곳에 위치한 보육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모를 우리나라 최초의 보육 기관 ‘해성보육원’이다.

해성보육원은 프랑스 ‘쌘뽈수도회’에서 한국 선교사로 파견된 3명의 수녀로부터 탄생했다. 이들은 보육사업과 더불어 부스럼 치료 등 무료 진료를 매개로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때, 집 없이 방황하는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성보육원의 전신인 제물포 고아원을 설립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보육원은 큰 시련에 부딪혔다. 신부와 수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다니며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마땅한 숙소도 구하기 어려웠다. 휴전 이후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늘어나 보육원을 재정비한 뒤 아이들을 모집했다. 1958년에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용현동으로 분원을 확장했는데, 그곳이 지금의 해성보육원이 됐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고아원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요즘 양육시설 아이들의 약 70%는 기혼 가정의 자녀이기에 더 이상 고아(孤兒: 부모가 없는 아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현재는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넘어, 상처받은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결핍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 해성보육원도 2017년 놀이치료실을 개설해 아동 개별에 맞는 심리·정서 지원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48년 세워진 해성보육원의 초기 모습

설레는 봉사의 시작

‘박소은 봉사자님 12시까지 해성보육원 강당으로 와주세요’

코로나19로 2년간 멈춰 있던 해성보육원 봉사활동이 재개됐다.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봉사 신청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성범죄 전과 조회서와 보건증 등 봉사를 마음먹고 한 달이 지나서야 필요한 서류를 모두 구비할 수 있었다.

서류를 모두 구비한 후엔 봉사 시작 전 꼭 이수해야 하는 교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교육이 진행되는 해성보육원 대강당에 도착하자 기자와 비슷한 또래부터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교육은 ‘봉사 시 유의 사항’을 위주로 진행됐다. 첫째,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주세요. 둘째, 아이들에게 과한 스킨십을 하지 마세요. 셋째, 아이들에게 깊은 가정사를 물어보지 마세요. 넷째, 아이들의 초상권을 지켜주세요. 사랑으로 보살피되 과한 애정은 안 된다는 지침을 듣고 ‘적절한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중, 수녀님이 기자를 불러 앞으로 함께하게 될 무지개 반으로 안내했다.

무지개 반의 문을 열자 귀여운 얼굴들이 기자를 흥미로운 듯 바라봤다. 일부는 낯선 사람을 경계했고, 몇 명은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반갑다며 폴짝폴짝 뛰는 아이들의 손을 가볍게 잡아주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서로 안면만 짧게 트는 시간이었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무지개 반을 떠났다.

“우리 아이들이 특이하다고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도 예쁜 아이들이니 보육원에서 좋은 추억 쌓길 바라요.” 자원봉사실로 향하던 중 담당 수녀가 기자를 응원했다. ‘특이한 아이들?’ 이때까지만 해도 조금 발달이 느린 아동이겠거니 추측했다.

조금은 특별한 아이들

본격적인 첫 봉사가 끝난 뒤 수녀님이 말씀하신 ‘조금은 특이한 아이들’이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무지개 반은 3세 아동들로 구성돼 있다. 이 시기 보편적 발달의 아동은 세 낱말 조합 이상의 문장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간단한 단어는커녕 옹알이조차 하지 못했다. “이게 싫어?”, “누나랑 퍼즐 가지고 놀래?” 아이에게 여러 번 질문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건 절레절레 흔드는 고갯짓뿐이었다.

언어 발달 지연은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사람들의 입을 보며 언어 자극을 받아야 하는 시기지만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2년간 봉사가 끊기고 보육원 아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보육원 내에서만 생활하며 제때 언어 치료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부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자신의 몸을 해치기도 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 별이, 초원이, 지한이가 동시에 안아달라 하는 바람에 별이를 늦게 안아준 일이 있었다. 심통이 난 별이는 혹이 날 때까지 벽에 머리를 쿵쿵 쳤다. 급하게 달려가 미안하다며 안아줬지만 이미 별이의 이마엔 볼록한 혹이 생긴 후였다.

해성보육원 아이들은 보편적인 아동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대’를 원인으로 입소했기에 부정적 정서를 건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부모의 폭력적인 언행을 그대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보육교사는 아이들이 가끔 자해도 하고,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을 때리기도 한다며 놀란 기자를 달랬다.

학대 외에도 해성보육원에 머무는 아이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부모의 이혼이나 투병, 교도소 복역 등의 이유로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해 보육원에 맡겨진 탓이다. 이렇게 가정해체 과정에서 이미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들어오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앞으로 쉽지 않겠다 생각하면서도, 안일한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더불어 깊은 상처를 가진 아이들에게 어떤 걸 해줘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봉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 조금은 ‘특이한’ 아이들을 ‘특별한’ 아이들로 바라보겠다 다짐했다.

마음의 문은 언제쯤

부푼 포부를 안고 두 번째 봉사를 나갔으나 이후 봉사에선 말 그대로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다. 처음에는 신기한 듯 기자를 이리저리 만져보던 아이들도, 금세 흥미가 떨어졌는지 각자 좋아하는 보육교사에게 달려갔다.

일부 아이들은 무관심을 넘어 지나치게 경계하기도 했다. 하루는 보육교사의 부탁으로 혜은이를 안고 보육원 산책을 나갔다. 혜은이는 유독 기자를 경계하는 아이로 산책하며 친해지라는 보육교사의 임무를 안고 혜은이를 안아 들었다. 싱글벙글 웃던 혜은이는 주 양육자가 눈에 안 보이기 시작하자 넘어갈 듯 울기 시작했고, 기자의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다. 차가운 흙바닥에 구르며 우는 혜은이를 진정시키곤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흙으로 꼬질꼬질해진 혜은이의 옷, 기자의 얼굴에 묻은 침 자국을 보며 보육교사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어봤다. “혜은이가 저를 싫어하나 봐요” 보육교사는 “싫어하는 게 아니라 표현이 서툰 것뿐이에요”라며 다독여줬다.

마음의 상처로 과잉 경계를 보이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후 세 번째 봉사, 네 번째 봉사에서도 여전히 일부 아이들은 기자를 잔뜩 경계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다 보면 그들도 마음을 열어줄 것이라는 불확실한 기대에 의존하며 꾸준히 봉사를 이어갔다.

철봉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
해성보육원 아이들이 물총 싸움을 하고 있다.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봉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아이들이 서서히 기자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몇몇 아이들은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기자가 언제쯤 오는지 기다리기도 했다. 하루는 보육원에 30분 정도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보육교사는 “별아 네가 찾던 누나 드디어 왔다!”라고 소리쳤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별이가 뛰어와 와락 안겼다. 그 순간 보육원 봉사는 가고 싶을 때 가는 ‘선택적’ 봉사가 아닌,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 ‘의무’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만큼은 아이들이 누군가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 마음을 열자 아이들은 무한한 애정을 쏟아주기 시작했다. 간식시간마다 자신의 몫을 떼서 입에 넣어주는 아이들. 괜찮다며 사양해도 기어이 마스크를 내려 제 몫의 간식을 밀어 넣는다. 취침시간, 온종일 울다 지친 해준이를 끌어안고 재우고 있는데 어디서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한아 용기 있는 자만이 여자를 쟁취하는 거야. 가서 네가 직접 말하고 와” 보육교사가 조언하자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지한이가 걸어와 말을 건넸다. “누나, 코…” 바로 그때 옆에 있던 보육교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봉사자님, 지한이가 봉사자님 옆에서 자고 싶대요!” 그제야 지한이의 의중을 알아채고 천천히 등을 토닥여줬다. 많이 피곤했는지 금세 잠든 지한이는 기자의 검지손가락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꽉 쥔 채 잠이 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유독 경계심을 보이던 혜은이가 마음의 문을 연 날이었다. 혜은이가 셀 수 있는 숫자의 최대는 ‘3’이었다. “하나, 둘, 셋, 셋…” 옹알이가 터지기도 전에 만났으니 엄청난 발달이라 할 수 있지만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언어 발달이 느렸다. 그런 혜은이를 붙잡고 셋 다음은 넷, 넷 다음은 다섯이라며 언어 자극에 열을 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혜은이는 기자의 얼굴을 빤히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셋 쪽!”. ‘셋 쪽…?’ 혜은이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던 중 리를 지켜보던 보육교사가 혜은이의 말을 해석해줬다. “혜은이가 봉사자님을 셋만큼 사랑하나 봐요”. 숫자를 셋까지 셀 줄 아는 아이가 ‘셋만큼 사랑한다’고 진심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봉사자로서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봉사 초반 동정 어린 시선으로 사랑을 주고, 아이들에게 무언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봉사가 끝나고 집 갈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일제히 양팔을 머리 위에 올려 하트를 만든다. 그리고 나간 문을 한참 긁는다. 집 가는 발걸음이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현재는 아이들과의 관계가 봉사 이상으로 진전됐음을 느낀다. 일방적으로 봉사를 한다기엔 그들이 주는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와 아이들은 서로에게 선물이 돼주고 있었다.

정문에서 바라본 해성보육원 전경

업무 강도는 높지만, 직원은 최저임금 받고 일해

24시간 아이들을 돌보고, 다친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건 직원들의 몫이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한 처우는 미흡한 상황이다. 해성보육원에서 14년간 근무한 임연정 총무팀장은 “해성보육원뿐만 아니라 다른 보육원, 사회복지 시설은 업무가 많이 힘든 편”이라며 “실습하러 온 대학생들도 현장에서의 업무 강도를 잘 못 견딘다”고 전했다. 아이들을 24시간 돌봐야 하는 보육원의 특성상 보육교사는 밤늦게 퇴근하고 아침 새벽에 출근할 수밖에 없다. 높은 업무강도에도 직원들은 최저임금에서 겨우 7만 원 정도를 더 받고 있다. 실제 해성보육원은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보육교사를 그만두는 이들도 상당하다.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처우는 곧 보육교사 이직으로 이어진다. 2021년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평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이직률은 34.4%로 매년 직원 3명 중 1명이 퇴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직원의 평균 근속 연수는 3.4년에 불과하다.

해성보육원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임 팀장은 “신입 선생님들이 들어오지 않아 보육원 내에서도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 전했다. 해성보육원이 수용할 수 있는 총직원 정원은 93명이지만, 남아있는 직원은 60여 명에 불과하다. 직원의 수가 부족할 경우 시설 내 수용할 수 있는 아이들의 인원은 줄어든다. 임 팀장은 “(직원 부족으로)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다”며 “받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의 아이들 받은 상황이라 선생님들이 많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돌보는 이유

그런데도 그들을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보람’이다. 임 팀장은 최근 보육원에 입소했던 세 살짜리 아기를 떠올렸다. “충격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져 식물인간 수준으로 시설에 입소한 친구가 있었다”며 “병원에서도 이 아이는 더 이상 발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선생님과 수녀님의 사랑 아래 기적처럼 조금씩 발달하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구순구개열이 심해 수유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도 있었다. 입천장이 뚫려 분유조차 먹기 힘든 상황이었으나 호스로 영양분을 공급하고, 늘 곁에서 물심양면 치료해준 덕에 현재는 수술도 받고 건강하게 퇴소했다.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아이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져서 퇴소하는 걸 보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해요” 임 팀장은 그 아이들이 해성보육원의 작은 기적이라고 했다.

보육교사와 아이들이 감나무에 달린 감을 따고 있다.

혈연을 넘은 나의 ‘진짜’ 가족

임 팀장은 해성보육원에서 근무하며 가장 힘든 것은 높은 업무강도가 아닌 ‘아이들과의 헤어짐’이라 했다. 해성보육원의 경우 7세까지의 아동만 입소할 수 있기에 학령기 아동은 타 기관으로 이동해야 한다. 전원(기관을 옮김) 프로그램은 보통 1년 전부터 시작된다. 가족 같은 이모들과 ‘헤어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임 팀장은 “워낙 아기 때부터 키워왔던 친구들이기에 선생님들은 엄마의 마음으로 키운다”며 “아이들도 많이 힘들지만 보내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때로 타 기관에서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듣거나, 보육원을 나온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해성을 다시 찾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보육원에서 함께한 양육자, 친구, 동생과 쌓아온 애착과 유대감을 ‘보육원 정(情)’이라고 부른다. 보육원에서 만났지만 보육원 정을 쌓았기에 진짜 가족처럼 연결된 사이가 됐다는 것이다. 해성보육원을 퇴소한 자립준비청년 A씨는 “내 편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함께 ‘보육원 정’을 쌓아간 언니 덕분에 힘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혈육 그 이상이었다.

“해성(海星)보육원 이름과 걸맞게, 어두운 심해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밝게 비춰주는 하나의 별 같은 봉사를 해주세요” 해성보육원에 처음 봉사 교육을 받았을 때 담당 수녀가 했던 말이다. 봉사를 오래 한 지금 그 말이 달리 다가온다. 무지개 반 아이들 역시 나에게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해성 같은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일곱 빛깔 빛나는 무지개처럼 개성 있는 일곱 아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취재는 끝났지만 아이들과 기자가 쌓을 ‘보육원 정’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박소은 기자  12203234@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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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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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upp 2022-12-02 01:46:19

    셋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랑이 이렇게 큰 줄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기사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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