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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주마등(走馬燈)

늘 취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취재수첩을 뒤적이곤 했다. 취재한 내용을 다시금 확인하려는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하나의 버릇이 됐다. 인하대학신문 기자로서 마지막 취재를 끝내고 허름해진 취재수첩을 보니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학기 시작 전 코너 기사를 배정하는 자리에서 마지막인 만큼 멋진 글을 써보겠다며 이번 종강호 ‘취재수첩’ 자리를 따냈다. 호언장담했으나 기껏 쓰는 글이 고작 퇴임을 앞둔 기자의 소회라는 점이 조금은 낯부끄럽지만, 그래도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이제 필자에게 주어질 인하대학신문 지면은 없을 테니.

첫 시작은 우연이었다. 군대 전역 후 뭐라도 해야겠다는 불안함 속에서 방황하던 중 인하대학신문을 만났다. 신문을 그저 바닥에 까는 종이 몇 장으로 생각했던 이가 온갖 노력을 기울여 신문을 만드는 자리에 올랐다는 게 어찌 보면 기막힌 우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습 기간을 거쳐, 정기자 그리고 부국장까지. 신문사에서만 무려 5학기를 보냈다. 대학 생활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내니 정이란 정은 전부 들었다. 단순히 오랜 시간 활동해서 그런 건 아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출근했던 편집국이 좋았고, 열과 성을 다해 찍어낸 모든 신문이 소중했다.

물론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핸드폰 통화목록은 어느새 수많은 취재원의 연락처로 가득 찼고, 친구들과의 대화 목록은 한참을 내려야만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놀러 갈 계획을 짜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신문사 일을 운운하며 거절하기 바빴다.

‘그놈의 신문사’, ‘신문사가 도대체 뭐길래’라고 묻는 친구들에게 그저 웃으며 다음에 꼭 놀러 가자는 기약 없는 말만 되풀이했지만, ‘그놈의’ 신문사가 지난 2년 6개월간 나에겐 전부였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기자로서 활동한 이유는 단 하나. 취재를 통해 쓴 글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혹자는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고뇌하며 애써 작성한 보도안이 반려되고, 취재원에게 날선 대답을 들어도 꿋꿋이 취재를 이어 나가는 의지. 더는 못하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면 언론은 ‘공기’라는 신념을 다시금 되새기며 현장에 있을 답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힘. 이 모든 것들이 그토록 뻔하고도 진부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에 다다랐다. 지금껏 만난 수많은 취재원들과 20명의 기자들. 퇴임을 앞둔 지금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눈치도 없이 빠르게 스쳐 가는 주마등이 오늘따라 유독 애석하기만 하다. 이젠 정말 끝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난다.

원종범 기자  yawjbeda@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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