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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즐기다-책] 낙원이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어때?

 

독일이 잔지바르(현재의 탄자니아 지역)를 지배하던 20세기 초, 11살 소년 ‘유수프’는 아버지가 갚지 못한 빚에 대한 볼모로 거상 ‘아지즈’를 따라가게 된다. 아지즈는 잔지바르 해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상인이다. 그는 유수프처럼 자신에게 빚을 졌지만 갚지 못한 사람들, 혹은 그 자녀들을 데리고 내륙의 원주민들과 교역을 하고 있었다. ‘카와’라는 작은 마을에서 유년기 전체를 보낸 유수프는 내륙으로의 여정을 통해 마을보다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쓴 ‘낙원’은 소년 유수프가 18살 청년이 되기까지 아지즈를 따라 여행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작품은 유수프의 여정을 따라가며 1차 대전의 참상에 휘말리기 직전, 동아프리카의 자연환경과 그 안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유수프의 시점으로 그려낸다.

지평선을 따라 하염없이 펼쳐진 무성한 산림, 뜨거운 햇살 사이 쉴 곳을 제공하는 대나무와 양치류, 숲속으로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산새들의 노랫소리. 작중 유수프가 여행하는 동아프리카의 모습은 얼핏 낙원처럼 보인다. 긴 행군을 마치고 신비로운 물보라를 형성하는 폭포 앞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유수프에게 동료 ‘하미드’가 물었다. “낙원이 이런 곳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아?” 아름다운 폭포와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시원한 강물, 사방에 펼쳐진 과일나무가 마치 이슬람 경전에 나오는 ‘낙원’을 연상시킨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는 달리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낙원과는 거리가 멀다. 시골 사람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갚지 못해 자식을 상인에게 팔아 넘긴다. 원래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흑인들과 상거래나 자원 착취를 목적으로 온 인도인, 유럽인 등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대립을 이어나간다. 같은 흑인끼리도 이슬람 신자와 토착종교인으로 나뉘어 반목하는 일이 다반사다. 처음에는 아지즈 일행을 환대하는 척하다 악의적인 모함으로 물건을 모두 빼앗은 후 쫓아내려는 부족장 때문에 유수프는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인종, 종교, 지역간 갈등과 불화의 장이 되어버린 잔지바르의 모습은 ‘낙원’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워 보인다.

이처럼 작품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처절한 인간사회가 뒤엉킨, 20세기 초반 동아프리카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스케치한다. 특징적인 점은 아무리 비극적인 순간이더라도 담담하게 묘사하는 문체이다. 미사여구나 감정 표현이 절제된 문체로 독자는 그 순간 등장인물의 심리를 상상하고 그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다소 충격적인 결말부에서 극대화되는데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비해 평이하게 읽히는 작품이니 겁먹지 말고 도전해봐도 좋을 것이다.

이기원 기자  12212918@inh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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